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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晉 시대 희대의 옛 부자 石崇 考察

略歷 : ()는 계륜(季倫)이고, 어려서의 이름은 제노(齊奴)이다. 원적지(原籍地)는 발해군(渤海郡)의 남피(南皮, 지금의 허베이성 난피)이며, 청주(青州, 지금의 山東省 青州市)에서 태어났다.

 

先親은 위(, 220~266)의 장수로 서진(西晉, 265~316)에서 표기장군(驃騎將軍) 등의 관직을 지낸 석포(石苞)이다. 서진(西晉)의 무제(武帝, 재위 265~290) 때에 수무령(修武令)으로 관직을 시작해 성양태수(城陽太守) 등을 지내고 안양향후(安陽鄕侯)로 봉해졌다. 혜제(惠帝, 재위 290~306) 때에는 중랑장(中郎將), 형주자사(荊州刺史) 등의 벼슬을 하였다. 형주(荊州, 지금의 河南省 南陽市 일대) 자사(刺史)로 있으면서 항해와 무역으로 큰 부자가 되었는데, <진서(晉書)>에는 "멀리 가는 상인과 관련 상인을 위협하여 치부하였다(劫遠使商客 致富不貲)”고 기록되어 있다.

 

實花苗根

壬丙壬己

辰申申卯

635343332313

丙丁戊己庚辛

寅卯辰巳午未

 

총평 : 신월 태양화 출생이라 양 강하임수가 투출하여 일간을 극해오니 큰 부귀가 누리든가 아니면 失機하여 가난에 夭折할 命造를 타고났다.

 

그러나 정확한 명리풀이는 전체 8자를 다 보고, 참고로 命宮을 뽑아서 일진의 최종적인 종격여부를 살피면서 포태월까지 참고해야 하므로, 더욱 자세하게 간명하려면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4자를 추간하여 합쳐서 총 12자를 간명해야 한다. 그래서 <命理는 공부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당 사주는 아무리 殺旺해도 년지의 정인묘목이 있기때문에 當代에 自手成家할 팔자는 아니다. 그러니까 조부 때부터 경륜과 재물의 터가 충분하게 닦여진 명조이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부의 씨앗으로 파종을 하고 충분하게 재물을 늘려서 당대의 아니 중국 역사상 향유한 를 최대로 즐긴 인물로 사서에 기록되고 있다.

 

아마도 추측하기로 辰 大運 유년 신유월 임신 계유일에 斬首(참수)당하지 않았나 싶다. 실로 이 사주가 생평 부를 충분히 향유하면서 풍요를 누린 것은 암장된 식신과 상관지공이라고 보아진다.

 

<病藥原理>로 보아서 除去病하는 23세부터 삼십 년 동안 최대의 부를 누렸을 것이다. 또한, 당사자의 당인의 사주상 처첩의 숫자는 많았지만, 정력은 별로여서 처첩들의 친족들이 석숭의 재물을 이용하여 그저 먹고 입고 자고 사는데 만족했을 법하다.

 

이러느니 차라리 실속있는 배필 한두 사람만 만나서 열정적으로 재미를 보는 쪽이 더 실리있는 인생이라고 판단한다. 많은 숫자보다는 실속있는 인물 한 사람이 오히려 일만 명을 대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남자의 폴과 여자의 홀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뛰어난 명품 폴과 홀이랬자, 모두 그 작대기와 그 구멍이며, 도찐개찐임이 필연적이다. 물론 각자의 이성에 대한 이상과 선호하는 방향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과연 어느 것이 최선이라고 딱 잘라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좌우지간, 石崇은 수많은 미녀를 처첩으로 거느렸지만 여자인 이 되는 운명상 절세의 미녀때문에 목이 날라가는 참수를 당하면서 생애를 마쳤다. 그 미인 상상으로라도 함 봤으면 좋겠다. 경금이니까 완금장철에 아마도 내공이 강(握力)하면서 武術(?)도 상당한 수준이었지 않나 싶다. 그래도 좋다. 石崇과 같은 부의 극치를 누릴 수 있다면, <조화와 균형>의 이치를 적용하면, 아마도 상당하게 오랜 세월 그 가치를 즐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끝.

 

海印導師.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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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海印導師 2019.07.13 09:42
세속나이로 태생부터12년간, 목숨이 달랑달랑하고난 후, 13세부터 51~53세까지(약40여년 간) 돈과 명예와 여자를 마음껏 탐닉하고나서~~~그것도 愛妾 한사람만 미련없이 내 버렸으면~~~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터인데~~~過猶不及을 몰랐던 탓인지~~~아니면, 당시까지 천하에 자신의 特定 人間意志 하나로 안 되는 것이 없었던만큼~~~<天地自然의 理致>를 몰랑(?)하게 판단한 탓인지? 그 정확한 이유는 모를지라도~~~흠~~~

인생 한갑자 가까이 잘 먹고, 잘 살고, 잘 싸고, 잘 베풀 수 있었다면, 까짓거 비리비리하게 일백살 채운 인생보다도 卓越하게 잘 살아낸 人生이라고~~~개인적으로 판단하는 바이다. 그래서 그를 상기하면서 이렇게 古書에 기재한 그의 사주를 가지고 이러저러하다라고 개인적인 견해를 披瀝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官吏라는 특권을 이용한 할애비 애비 자신까지 富(부는 원천적으로 일방이 타방을 빼앗아 축적하는 데서 일구어진다)의 취득과정의 正當性과 不當性을 따지기 이전에, 그 效用價値를 충분하게 누리고 갔다면, 까짓거 人生 빌빌한 일백세보다도, 절반인 石崇의 인생 방향을 欽慕하여 취할 衆生이 茶飯事일 것으로 객관적인 推測을 할 뿐이다.

오후에 비님이 내리신다고 예보(구름이 꾸무리한 것이 그러할 것이라고 추측함)때문에 비 맞고 우산들고 산책하는 궁상스런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려고, 약 50분에 걸쳐서 동백 호수주변을 빠르게 걷고나서 자리에 坐定하었더니~~~역시 기분이 댓길다라고라~~~ㅎ~~~  역시 온난을 잘 조절해주는 <冷暖房器>는 天惠의 器物일지라. 天地神明이시여!!! 感謝합니다.~~~ㅎ~~~

海印導師.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