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동양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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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印導師&運命學問&因緣說破★용인개명★결혼/이사택일●

海印導師 0 10 13:32

무릇 인간 세상의 냉정한 “사물의 법칙”의 鐵則(철칙)은 다음과 같다. 즉, 어떤 原因(원인)에 의해서 그 결과가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인연 법칙의 엄중한 적용은 바로 생체동물이자 만물의 영장인 “호모 사피엔스” 종족이 천하에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 적용된다. 오늘 그러한 출발과 과정과 결과를 향해 달리는 한 사람의 “호모 사피엔스”가 경험하고 운명을 극복하면서 헤쳐나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대로 기록한다.


오늘 지난 글을 추억하여 복기한다. 즉, 海印이 직접 겪은 陽宅과 陰宅에 대한 凶禍 事例를 올린다. 만약 전문가가 양택의 사진을 원하면 출장하여 현장의 동서남북 모든 사진을 찍어서 직접 올려줄 수도 있다. 음택은 개인 정보 보호상 상석 글자를 지운 사진을 올린다.


1. 題目 : 妖祥한 집터에 關한 回憶


회고하자면, 그러니까 지난 1967년 경이다. 나의 탄생지 경북 경주시 마동 987번지 소재의 과수원이 채권자의 손에 넘어가 버리자, 당장 이사할 곳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같은 동네의 6XX번지(대지 약 500평)의 집이 비어 있었다. 당 집은 같은 동네의 南虎龍 氏(6.25 참전 상이용사. 작고) 소유의 집이었는데, 그 집에서 불이 자주 나는 등 흉한 일이 발생하자, 南호용 氏 부부는 당 집을 비워두고 동네의 뒤 편 언덕에 새로 농가 집을 신축하여 이사한 후, 빈 집터였다.


당시 시세보다도 헐한 값에 그 집을 매수하여 海印 가족은 이사했다. 이사한 다음 해에 海印은 경주시 황오동 모처 반월성 입구 건널목 인근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千秋(천추)의 悔恨(회한)을 남겼다. 이하 설명하는 내용은 과학적인 근거는 없을지라도 거의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다.


즉, 이사한 그 집에서 육 년이 지난 시점에 海印은 고교를 졸업하고 장사를 하기 위해서 인근 도시 경주시 사정동으로 이사했다. 당시 자나깨나 그 집에서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할 것 같은 正確하게 알 수 없는 某種의 强迫觀念(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그래서 海印은 모친에게 거듭 말씀드려서 마침내 허락을 얻었다.


사건의 발생은 그 시점부터 당 집에 세를 얻어서 이사를 한 가족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1968년부터 1978년까지 약 10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말한다.


맨 첫 번째 이사를 들어 온 사람은 徐某 氏(作故)다. 그의 가족은 글을 쓸 당시도 같은 마동 인근에서 구멍가게를 열고 있었다. 徐 氏의 장남 서00이 같은 해 교통사고를 당해서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래서 徐 氏 가족은 현재의 구멍가게 터로 이사를 가 버렸다.


두 번째 이사를 들어 온 사람은 裵某 氏(作故)다. 역시 공교롭게도 그의 아들 중 장남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현장에서 즉사했다. 사건 후, 전에 세 들었던 徐氏의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그의 가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윗동네 탑마을로 이사를 가 버렸다.


세 번째로 집세 없이 이사를 들어 온 사람은 박수무당이자 獨不將軍(독불장군) 崔某 氏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의 장남도 교통사고를 당해서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러자 온 동네에 凶家(흉가)라고 소문이 나고 이사를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서 海印 가족이 경주에서 벌였던 중화요리 식당 "춘추반점" 영업을 접고 다시 그 집으로 이사한 1978년도까지 약 이 년간 집이 비어 있었다.


그러나 불행은 그곳에서 그치지 않았다. 1978년도 코오롱 호텔에서 음악 관련 일을 하면서 아래채 방에서 월세를 살던 청년이 그곳에서 연탄가스에 질식사했다. 海印의 모친은 당 사건 때문에 경주경찰서로 여러 번 불려갔다.


그런데 불행한 사건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먼저 기술한 南氏의 장남(故 남철모)이 역시 당시로 볼 때 최후에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 집으로 인한 가족의 불행을 피하고자 집을 신축하여 이사까지 감행했던 남 씨(作故) 夫婦의 결행도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海印은 연속한 흉한 사건을 직접 목격하면서 “참 이상하기도 하다. 내 후에 반드시 기록으로 남길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사실 海印도 장남이다. 그 집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던 가족의 장남 중에서 유일하게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衆生(중생)은 바로 海印뿐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믿을 수 없는 사건은 개인적으로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확언하건대, 내가 결혼하여 장남의 탄생 전에 그 집을 매매하기 위하여 맨 처음 그 집을 소개해 준 徐 某氏(철도청 근무 직원. 作故)를 찾아가서 그에게 “結者解之/결자해지라~~ 형님께서 이 문제를 풀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가격에 상관없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집을 팔아 주십시오”라고 그간의 사정 설명과 함께 간곡하게 부탁했다.


때마침 우연의 일치로, 근처에서 온천수가 나온다는 소문 때문에 그 영향으로 외지에서 투자하는 某氏에게 海印의 염원대로 장남의 탄생 전에 서둘러서 당 집을 매매할 수 있었다. 당시 위 徐 某氏가 전화로 적정가격에 계약하자는 소리를 하길래, 성동경찰서에서 근무 중 특별휴가를 내고 당일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매매 건을 성사시켰다.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때가 가장 속이 후련했다.


그 후 현재까지 딱 한 번 당 凶家(흉가)를 근처에서 바라본 적은 있다. 왜냐하면, 비록 타인의 가족이었지만 당 집에 거주했던 사람들에게 발생한 연속적인 凶한 사건의 기억이 징그러웠기 때문이다. 당시도 그 집은 비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래서 海印이 더욱 양택과 음택 풍수지리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었다. 이 세상일이란 어떤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발생한다는 인과관계의 등식이 성립한다. 설령 그럴지라도 불행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는 연유는 반드시 면밀하게 살펴봐야 또 다른 불행한 사건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제언을 하면서 이만 글을 줄인다. 사실 해인도사가 그 후 때가 이르러 命理學問(명리학문)을 깊이 공부하고 음택과 양택공부에 心醉(심취)했던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성장 당시의 주변 환경으로 인한 원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해도 맞는 말이다. 끝


2. 좌 버스, 우 택시 명당의 흉화 사례 소개


어제는 절기상으로 입춘이 지났으므로 운동 삼아 모처를 방문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유난히도 눈에 띄는 <좌 버스, 우 택시> 명당이 보였다. 그래서 일행에게 "저곳에 산소를 들이면 직계가족이 줄초상 나는 자리인데, 누가 겁 없이 저렇게 함부로 산소를 집단으로 이장했는가? 심히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인근 동네로 접어들어 촌로를 찾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후에 그 산소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들어오는 길에 누가 좌 버스, 우 택시 명당(좌측에는 버스가 들어갈 수 있고, 우측에는 택시가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천하의 명당이다.)이라고 잘못 산소를 들였는데, 그 장소는 풍수지리업계에서 가장 금지하는 천하의 제일 흉당일진대, 그 장소에 산소를 이장한 집안에 줄초상 난 일이 없습니까?"라고 질문했다.


다소 놀라는 눈치의 촌로가 내뱉은 말은 이러했다. "선생은 뭐 하는 양반이시오? 안 그래도 그 집안에서 약 일년 전인가? 가장이 로또복권 1등에 당첨이 된 후, 거금을 들여서 저 앞산 여기저기에 널려 있던 조상 산소를 다 파내서 그곳에 가족 묘지를 조성하고 난 후에, 모처에서 장가도 안 간 30대의 장남이 약을 먹고 자살하고, 나이는 들었지만, 그 사람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또 제수씨가 화재사를 당해서, 줄초상이 나니까, 이곳에 있는 집을 팔고, 다른 동네로 도망가듯이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거참! 그 일 때문에 자주 가족 싸움이 일어나고 동네 시끄럽게 한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예! 잘 알겠습니다. 말씀 감사하다고 말한 후, 그 장소를 떠났다. 위에 그 산소의 사진을 올리니까, 음택과 양택(의뢰인이 필요한 경비만 부담하시는 조건으로 출장하여 안내 가능함.)의 풍수지리에 관심 있는 분께서는 널리 참고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풍수지리에 대해서 잘 모르면 먹고살 만하더라도 후손을 위해서(가령 남자 손자가 없을 경우 포함) 죽은 조상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오로지 풍수지리에 無智(무지)한 자신의 주관적인 고집스러운 판단과 편의 위주로 함부로 산소를 건드린다면, 아마도 추측하건대 위와 같은 재앙이 닥칠 우려가 있으니까, 잘 생각하고 판단할 문제라고 확실하게 정의해서 이곳에 밝힌다. 물론 과학적인 입장에서는 믿거나 말거나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하고 느낀 사실을 기록한 경험론일 뿐이다.~~~ㅎㅎ~~~

海印東洋哲學院에서 몇 字 記錄을 남기다.


海印導師.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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