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들★사주★주역★육효★일년신수★작명★개명★재개명★궁합★택일★해인동양철학원●
대저 명리학문상으로 정관은 천간에서 제8위요, 편관은 제7위에 위치하고, 정관은 명예심을 북돋우게 하는 것이요! 편관은 七煞(칠살)이라고 본명을 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편관도 食神•傷官으로 制(제)함이 있으면 정관으로 본다. 정관의 경우 식신•상관으로 제함이 태과하면 오히려 본명의 명예를 실추하고, 본명의 복과 명을 추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관은 근본적으로 抑制(억제)함을 싫어한다. 단, 편관은 식신으로 억제하면 정관으로 변화하여 본명의 명예를 드높인다.
무릇, 명리학문상의 크게 바탕을 이루는 기본명제는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 太過不及(태과불급)이나 過猶不及(과유불급)의 원리이다.” 본명의 뿌리가 튼튼하고 身旺(신왕)하여 관과 재를 당해낼 힘이 있으면 정관•편관은 본명의 벼슬이 되고, 명예가 되며, 용신으로 작용하여 아름다운 오행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데 본명이 신약하거나 從格(종격)도 되지 않고, 재관을 사용할 수도 없고 근원적으로 신약한 사주는 관이 투출하여 뿌리가 튼튼하면 매사 관재구설수에 쫓기고, 범죄인으로 추락하여 관의 추적과 감시를 당하게 되는 초라하고 괴로운 운명의 신세로 추락하게 된다. 그러하건대 누가 관이 투출되면 무조건 좋다고 함부로 간명하겠는가? 대저 명리학문이란 복잡다단한 세상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정관•편관이 좋다고 하나 본명이 뿌리가 튼튼하고 재관을 감당해 낼 능력이 있어야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본명이 정•편관을 당해낼 능력이 없으면 오히려 관이 본명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돈 많고 늙은 70대 호색한 노인(★이 글을 작성할 당시 海印導師는 50대였다. 그런데 직접 70대 마이너스 일 년 시점이 되어보니까 내용을 수정 한다. 즉, 인간마다 스스로 관리하고 대운과 세운의 적용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즉, 인간은 나이가 문제가 아니고, 현재 시점 당년까지의 갈고 닦으면서 수련한 정신과 체력의 바탕체가 문제일 뿐이다★)이 청춘의 기를 받아들인답시고 20대 아름다운 여인을 첩이나 간호인으로 맞이하여 바이아그라 등을 먹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4~6초간 불멸의 쾌감을 얻기 위한 섹스 등 성생활을 영위하려고 할 경우, 노인이 젊은 시절을 생각하고 용맹스런 힘을 과히 소모하면 결과적으로 남은 壽命(수명)만 재촉하게 될 뿐이며, 젊은 여인은 냄새나는 노인을 하루라도 빨리 멀리 보내기 위해 “자기는 나이에 상관없이 젊은 청년에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구슬리면서 정력에 좋다는 보약과 高콜레스테롤 함유 고깃국을 계속 몇 년 먹이면, 노인은 일십년 내 자동적인 기력소모로 인한 심장마비 등으로 골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노인은 스스로 위안하며 말하겠지 “어차피 살 만큼 살았고 한번 가는 인생인데 젊은 여인의 품에서 가게 되니 행복하다”라고 말씀이다. 그 후 젊은 20대 여인은 자유를 찾고 장소를 바꿔 변신하고 여인의 과거전력을 전혀 모르는 새로운 어수룩한 제3의 남자를 배우자로 맞이하여 소위 팔자를 고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길지는 않겠지만 말씀이다.
무릇 정관•편관은 본명을 치는 오행이니까 본명을 부단하게 움직이게 한다. 즉 가만히 앉아서 게으름을 못 피우게 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정관•편관이 힘이 있으면 절대 본명이 게으름을 못 피우게 되고 무엇이든지 어떤 행위를 시도하려고 한다. 즉 창조와 노동을 부단하게 하는 인소가 바로 정•편관의 역할이다. 실제 생활에서도 아들•딸을 교육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家長(가장)은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편관의 제함이 지나친 사주는 늙어 흰머리가 나도록 학문은 계속하지만 사회에서 한번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게 된다. 그러할 경우 위인은 스스로 공부한 사실을 책으로 남기고 기록하여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후세의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게 처신하면 본인의 할 바를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논형”의 저자 왕충 정도라고나 할까? 사마천이나 한비자 같은 위인들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들은 재주가 지나쳐 당대에서는 불우했지만, 후세인의 영원한 스승으로 기록된 위인들이다. 또한, 정•편관은 印綬(인수 즉, 부모)를 생하여 본명을 도와주는 근원 역할을 하게 된다. 본명이 약하고 인수도 약할 경우 정•편관은 인수를 생하게 하여 인수가 본명을 생하는 뿌리 역할을 하게 되니 멀리서 본명을 도와주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결론적으로 명리학문상으로 본명이 신왕하고 정관•편관이 투출하고 뿌리가 튼튼하면 대체적으로 吉命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정•편관은 본명을 쳐서 사람을 만들어 주니까(도끼로 나무를 쳐서 동량지재를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말씀이다. 단, 본명이 관을 받아낼 수 있게 身旺해야만 한다(도끼질 한 방에 잘려 버리는 나무는 기둥으로 만들 수 없는 원리이다). 그래야 확실한 길명이다. 아울러 운로 상으로 재관인 운으로 향해야만 관직이 날로 향상되고 구설이 없고 복록이 한없이 다가온다. 이러한 이론을 실생활에서 적용하면 “어떠한 본명을 타고났더라도 부지런하면 최소한 호구지책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란 결론을 도출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부지런하고 근면한 올바른 생활을 추구하고 마지막 가는 그 날까지 자신의 이상을 향하여 자기계발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누구나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대저! 참으로 이상하다. 부귀빈천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가? 아니 그래 모태에서 수태되는 회임의 그 순간이! 그 순간의 기의 흐름과 작용이 일평생보다도 귀중한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 아니한가? 그런데 실제는 그렇게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지 아니한가. 왜? 태어날 때의 시간으로서 인간의 부귀빈천을 논하는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왜 그런가? 역사의 반복됨을 부추기는가? 결국, "조화와 균형의 이론"이 여기까지 미치는가? 등의 명확한 답변 없는 의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이러한 관점에서 살피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그것은 이러하다. 인간의 운명이 사주팔자와 전혀 상관이 없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도 더욱 혼란한 지경에 빠질 우려가 있다. 먼 세월을 관조하면서 서서히 준비하는 모습은 사라질 것이고, 세상사를 당장 내가 살아있을 때 모든 것을 보고, 이룩하고, 당대의 인간이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을 조정하려고 들 것이다. 어떤 이는 수명을 몇 백 살 늘리려고 할 것이며, 어떤 이는 지구 위의 모든 나라와 백성을 지배하려 들 것이고, 어떤 이는 더 이상 성취할 것이 없으면 지옥의 문을 열려고 노력할 것이며, 그야말로 지구를 재빠르게 아수라장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인 이 땅! 즉 지구는 자아 존재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도 자신의 몸 위에 생존하는 모든 유기물체와 무기물체를 공전과 자전의 힘으로 통제하고 있으며(공전과 자전으로 인한 천기의 변화로 인하여 인간의 수태 시점과 탄생 시점이 결정되고, 그 천지자연의 기운이 특정 인간이나 동물의 생존 시와 또는 사망 시의 길흉화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무한한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면서도 자신을 파괴할만한 물체 즉, 자신과 동일하거나 절반 정도의 물체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잘도 피하고 광활한 우주를 끝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자신이 속한 은하계 내에서 三千五百萬(삼천오백만) 年을 일주기로 말씀이다. 지구! 우리의 영원한 어머니! 이 땅은 어제도 그렇게~ 오늘도 그렇게~ 내일도 그렇게~~~ 영원히 우주를 항해하면서 존재하시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 인간의 부귀빈천 수명장수 건강 등은 너무도 미세한 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인간의 처지에서 보면 어차피 한세상 머무는 것인데 좀 더 행복하게 생을 유지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천부적인 특권으로 규정하여 마땅하다. 그런 중대한 특권이 모태 내의 수정되는 어느 한 시점의 천지 기운의 영향을 받아 본명의 의지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가운데 결정된다는 사실은? 우리를 너무나 슬프고 허무하게 만든다. 혹자는 海印의 이런 말을 지나친 망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는 아직 운명의 가혹한 회초리를 한 번도 맞아본 경험이 없는 너무나 유약한 존재이고 我執(아집)과 無明(무명) 속에 헤매고 있는 인간군이라 해도 과히 틀리지 않는 말씀이다. 어쩌면 가엽기도 하다. 그러한 것을 깨달을 즈음이면, 떠날 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여러분들은 海印의 이런 지론에 대해서 그가 왜 그런 말을 해야만 했던가? 원인 분석을 해보는 것은 유익한 인생을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서 좋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을 때, 그 즉시 성불에 가까워질 수 있다.
자! 총체적이면서 대체적인 정리를 하자.
첫째, 本命(본명)을 깨닫고,
둘째, 順理(순리)대로 調和(조화)로움을 追求(추구)하며, 恒常(항상) 變化(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셋째, 恒常(항상) 現存(현존)을 感謝(감사)하고 永遠(영원)을 바라보자! 瞬間(순간)을 永遠(영원)으로 바라보는 能力(능력)을 길러 나가자!
어차피 위 양자(瞬間과 永遠)는 마지막 순간에는 같고 마지막이란 말도 처음과 같으며, 처음과 끝이란 말조차도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하나의 어떤 特定(특정) 修辭的(수사적)인 言語(언어) 槪念(개념)에 不過(불과)할 뿐이다.
眞實(진실)은 그곳에 있다. 곧 여기 이곳 海印東洋哲學院(해인동양철학원)에 있다.
海印導師,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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