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生法印♥海印東洋哲學院♥용인작명소♥개명·작명●
오늘은 무생법인(無生法印) 관련 글을 옮겨 적는다.
즉, 법화경 제17 분별공덕품
[그때, 모였던 대중은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수명의 겁수가 이렇게 오랜 것을 듣고,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지 중생이 큰 이익을 얻었음을 알았다.
이 때, 세존께서 미륵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아일다여, 내가 여래의 수명이 오랜 것을 말할 때에 6백 80만억 나유타 항하사 중생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느니라. 또 1천 곱 보살마하살은 문지 다라니문(聞持陀羅尼 門)을 얻었느니라.]
지장보살본원경
[지장보살은 이미 여래의 경지에 이르렀고 무생법인(無生法印)을 얻었다.]
관무량수경
[부처님의 몸을 볼 수 있으면 또한 부처님의 마음도 볼 수 있는 것이니, 부처님의 마음 곧 불심(佛心)이란 바로 대자대비이며 모든 부처님들은 이러한 무연자비(無緣慈悲)로써 모든 중생을 섭수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관조할 수 있는 사람은 내생에는 여러 부처님의 회상에 태어나, 생사를 깨닫는 무생법인을 얻게 되느니라]
유마경
[대승 마음을 낸 이가 이 밥을 먹으면 무생법인을 얻은 연후에야 삭고, 무생법인을 얻은 이가 이 밥을 먹으면 몸에 독기가 죄다 없어진 연후에야 삭는 것과 같이 이 밥도 그러하여 일체 번뇌 독기를 없애 버린 연후에야 삭나이다]
인욕 바라밀다를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상(相)을 여의게 된다. 곧 ‘나[我]는 나’라는 거짓된 나[我]의 관념을 벗어나 자신 스스로가 본래 공(空)한 존재임을 깨달아 그릇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는 것. 그리하여 온갖 공(空)의 실상을 깨달아 마음을 편안히 하고 정적 가운데 머무는 것. 이것을 우리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말하는 바,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의하면
이렇듯 참된 인욕 바라밀다를 수행함으로서 초지(初地) 보살은 7·8·9지(地) 수행 정도의 ‘무생법인’을 증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마조스님曰
[마음(心)과 경계(境)를 깨달으면 망상이 발생하지 않으며, 망상이 나지 않는 그 자리가 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다. 무생법인은 본래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어서 도를 닦고 좌선할 필요가 없으니 닦을 것도 없고 좌선할 것도 없는 이것이 바로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다]
무량수경
[아난이여, 또 누구든지 저 불국토에 가서 나는 사람은 32상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지혜가 충만하여 모든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신통이 자재하다. 그들 가운데서 가장 둔한 사람일지라도 두 가지의 파악, 즉 설법을 듣고 깨닫는 것(音響忍)과 진리에 수순하여 깨닫는 것(柔順忍)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근기가 수승한 사람은 불생불멸의 도리를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반주삼매경
[유순하게 행하여 해치는 마음 없애고 모든 악을 버려 비방함 즐기지 말며 색심으로 구하지 말고 무생법인 얻어 마땅히 이 삼매 독송해야 하네]
이산혜연선사발원문
의상조사백화도량발원문에도 ‘무생법인’이란 말이 등장한다.
무생법인과 대승보살도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의 정도에 따라 깨달음의 단계가 다르다는 것을 설해 왔다. 이른바 사향사과(四向四果)가 바로 그것이다. 초기 대승불경에서도 이른바 이 계위를 사용하고 있지만 <대품반야경>이나 <십지경>에 이르면 대승불교의 독자적인 계위(階位)가 설해지기 시작한다. 발보리심, 불퇴(不退)의 위, 무생법인, 동진(童眞)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승불교의 발달과 함께 사지(四地), 오지(五地), 십주(十住), 십지(十地) 등으로 정착된다. <화엄경>등으로 말하는 이른바 보살 52위는 이러한 대승보살 계위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무생법인이란 무생(無生)의 이치 즉 존재[法]의 불생(不生)을 결단하는 깨달음이며 공(空)을 깨달음으로 얻어지는 인(忍)이다. 인(印)이란 인가(忍可), 인허(忍許)의 뜻으로 확실히 인정하는 것, 진실의 이치를 깨달은 마음의 평온을 말한다. 즉 불생불멸의 진리를 깨달아 알고, 거기에 머무르며 물러서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무생법인은 불퇴의 위와 함께 대승경전에서 널리 나타나는 중요한 수행의 계위로 보살이 초지(初地)나 7·8·9지에서 얻는 깨달음으로 이 무생법인을 얻음으로써 불퇴의 위(位)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돈진다라니경(眞陀羅經)>에 의하면 보살은 육바라밀 수행에 의해 무생법인을 얻고 불퇴전(不退轉)에 도달하며, 10지의 계위에 올라 깨달음에 다가감을 설하고 있다.
대승보살의 수행은 남을 이롭게 하는 일에 뛰어듦으로써 자기의 수행이 완성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육바라밀 수행이다. 이 바라밀 수행은 자리(自利)를 구하지 않고 오로지 이타행에 전력하는 것이며, 성불을 도모하지 않는 끊음없는 수행이기 때문에 이러한 수행에 나가기 위해서는 대단한 결의와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공(空)의 입장에 서 있어야 하며 수백, 수천생을 거듭하여도 이타행에 나가기 위해서는 바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를 깨닫고 그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생법인(無生法印)이다.
즉 무생법인은 대승보살이 수없이 생을 거듭하면서도 이타행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깨달음이며 아무리 생을 거듭하여도 바라밀 수행을 계속 한다면 결국 무생(無生)이라는 믿음, 무생의 이치에 머무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이타행에 나갈 수 있는 믿음이 되며 아울러 이타행을 위한 결의인 큰 서원의 갑옷(弘誓의 大鎧. 僧那僧涅)을 입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생법인은 생을 거듭하면서 이타행을 계속하도록 하는 보살의 믿음이라고 할 것이다. 보살도를 지향하는 불자라면 마땅히 이러한 보살의 결의와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무생법인(無生法印)이란 말 그대로 무생의 이치, 즉 남[生]이 없는 진리를 깨달아 아는 인(印) 즉, 忍可 한다는 것이다.
卽, 나고 죽는 이치(理致)를 깨달아 안다는 것은? ‘본래 나고 죽는 것이 없다’는 이치(理致)를 깨닫는 것이며, 생사(生死)의 理致를 넘어서서 한 생각 나고 없어지는 理致, 이 마음이 일어나고 없어지는 이치(理致)를 깨닫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本來부터 공(空)하였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천하(天下) 중생은 한 순간(瞬間) 마음을 잘 먹고나서 깨달아 실행(實行)하면, 그의 人間萬事가 만사형통(萬事亨通)할 卦"라!~~~ㅎㅎ~~~
海印導師.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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