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철학관★용인작명소★용인개명★용인작명★용인궁합★용인택일★인간컴퓨터 徵兆●
대저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외부적인 각종 사건 사고에 충격을 받으면, 인간은 입안에서 어떤 징조를 보이는 기가 막힌 입안의 감각시스템을 선조로부터 선물 받았다고 개인적인 판단을 내린다.
즉, 젊은 시절 사이드카 교통순찰대에 근무를 시작한지 약 육개월 만에, 88올림픽 에스코다 업무가 종료하자, 순찰대 인원을 대폭 조정하는 바람에 그 계획에 걸려서 약 육개월 정도 한시적으로 경찰서로 원대복귀발령이 나는 정보를 접한 당일이었다.
그야말로, 나름 기질과 체력으로 열심히 근무하려고 작정한 나에게 靑天霹靂(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당일 저녁에 집으로 귀가해서 저녁을 먹는데, 생전 처음으로 <밥알이 돌 씹히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래서 옛말이 과연 이해되었다. 그것은 첫 번째로 경험한 挫折感(좌절감)에 의해서 느껴지는 입안의 감각이었다.
두 번째는 업무상 과로에 인한 <입안에 단내가 난다>란 감각이었다. 그 사건을 발생한 사연은 생략한다. 다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즉, 약 팔개월 정도의 신체적인 과중한 업무에 노출되면 오는 현상이다. 海印導師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같은 조건의 비슷한 경험을 했으면, 아마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체동물인 인간은 <생체적 고성능 컴퓨터>라고 말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것 같은 판단이다.
옛날 나의 나이 스무 살 때쯤인가? 경주시 불국사 구정동에서 좀 껄렁하게 사는 인근 초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려서 모종의 형사사건(?)을 발생시키고 나서, 웅촌면 통천리로 잠깐 일시적으로 潛蹤秘跡(잠종비적)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일시적으로 머문 그 집은 촌부자라 일 년에 약 일백 석 이상의 벼수확을 하는 집인데, 당시는 막말로 어데 다른 곳은 갈 곳도 없고, 좌우지간에 제대로 딱 얻어 걸려서, 내 생애 그렇게 노동으로 뼈 빠지게 땀 흘려 본 기억은 없다. 한해 가을 그 많은 농사 가을추수를 완료 하고 廣川(광천)들에 소똥으로 만든 퇴비까지 뒷걸음질로 트위스트를 추면서 모두 뿌렸는데, 탈곡하는 일은 보조(이것 직접 탈곡 기계를 2명씩 교대로 밟아대는 기술자보다 더욱 힘들더라만~~~휴우~~ㅋㅋㅋ~~~)로 일했다.
그 당시 추수를 하다가 잠깐 휴식할 때, 잔디가 깔린 제방 논둑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피우는 담배 맛이 어찌 그렇게 황홀했던지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래서 담배를 일종의 마약이라고 칭하는 지도 모른다. 그 후 피우던 담배를 끊은 지도 약 40년이 지난 것 같다.
그러한 가혹한 노동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제하는 바람에 당시, 나는 天地神明(천지신명)에게 맹세를 했다. 즉, “향후, 지게를 두 번 다시 나의 어깨에 걸치지 않겠다. 사람을 다루는 기술을 가르치는 체육관 관장이나 다른 기술자가 될 것이지, 기술 없는 막勞動者(노동자)는 되지 않겠다고”
그 때 작정을 지금 생각해보면, 그 후 경찰공무원 직책을 약 33년간 大過(대과) 없이 무난하게 봉직했고, 서울시경순찰대와 경찰서와 김포국제공항경찰대 등 武道(무도)師範(사범)을 본업 직책(외사경찰관 업무와 싸이카 순찰대원 업무와 일반 경찰업무)과 겸행하여 약 33여 년 간 담당·수행했으니까, 일단은 그 결심과 작정이 成功(성공)했다라고 판단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한, 갑오년 중반 경 국가공무원 경찰 직책에서 퇴직 후, 현재 이곳에서 해인동양철학원장의 직책을 약 8여 년 간 잘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끝.
海印導師. 合掌.
海印導師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