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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印導師 0 3,042 2020.05.26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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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철학자, 장자

장자(莊子), 기원전 340?~기원전 280?

장자(莊子), 기원전 340?~기원전 280?

노자와 함께 도가를 형성한 장자1)는 송나라의 몽읍()에서 출생했다. 이곳은 호수와 숲이 많았고 경치가 아름다웠으며 기후는 온화했다. 장자의 이름은 주()이고, 자는 자휴()이며, 칠원성()의 말단 관직에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모양이다. 끼니를 굶을 지경이 되자 어느 날 치수()를 담당하는 관리에게 쌀을 좀 빌리고자 했다. 그러나 그 관리는 쌀쌀맞게 말했다.

“내가 수확기에 전세()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당신에게 삼백 냥을 빌려주겠소.”

그의 말에 불쾌해진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리로 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사방을 둘러보았더니, 시궁창의 붕어 한 마리였소. 그 붕어가 나에게 하는 말이 ‘나는 동해의 파신()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한 말의 물을 주어 제발 살려주십시오.’ 하는 것이었소. 그래서 나는 ‘내가 남쪽의 오나라와 월나라의 군주를 만나면 큰 강의 물을 끌어다가 당신을 환영하도록 청하리다.’ 했소.”

장자는 이 비유를 통해 사람이 급할 때 조금만 도와주어도 될 것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말장난으로 희롱하는 것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었던 것이다.

노자와 장자를 묶어 우리는 흔히 노장() 사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노자가 정치와 사회의 현실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데 대해, 장자는 개인의 안심입명()2)에만 몰두했다. 노자가 혼란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무위자연에 처할 것을 가르쳤던 반면, 장자는 속세를 초탈하여 유유자적하고자 했다.

노자의 《도덕경》이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하는 철학적 작품인 데 비해, 장자의 《남화경()》은 읽는 사람을 도취의 망아() 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문학적 작품이다. 장자는 철학자임과 동시에 탁월한 산문가로서, 일천여 년 동안 그의 문학을 모방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문장은 모두 우화()3) 형식으로 되어 있고 내용도 대부분 허구적이기는 하지만, 《이솝 우화》에서처럼 무궁무진한 의미가 들어 있다.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철학자, 장자 본문 이미지 1

만물은 도의 나타남이다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철학자, 장자 본문 이미지 2

장자에 의하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삼라만상은 모두 도가 나타난 것에 다름 아니다. 도 밖에 만유(, 만물)가 없고, 만유 외에 도가 없다. 만물은 도가 밖으로 나타난 것이므로, 도는 만물을 생성하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만물은 도에서 생겨나고, 다시 도로 돌아간다. 도는 절대무차별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스스로 근본이 된다. 도는 모든 것을 보내고 맞아들이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건설한다.

그러므로 진정 도를 깨닫는 사람은 삶을 기뻐하거나 죽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작은 것을 탓하거나 성공을 과시하지도 않고, 억지로 일을 꾸미지도 않는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을 때 아무런 저항 없이 편안하게 살아가듯이, 사람 역시 도 가운데 행할 때 아무런 문제없이 스스로 유유자적하며 살아갈 수 있다.

삶과 죽음은 하나다

장자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사물이 서로 얽히고 뭉쳐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의 만물일체론()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물은 전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어떠한 개별적 변화도 전체 질서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가령 한쪽의 완성은 다른 쪽의 파멸을 뜻하므로, 전체 질서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장자가 죽어갈 때,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안장()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고 있었다. 그러자 장자는 “나는 천지를 관으로 삼고, 해와 달을 벗으로 삼으며, 별들을 보석으로 삼고, 만물을 휴대품으로 삼으니, 모든 장구는 갖춰진 셈이다. 여기에 무엇을 더 좋게 하겠느냐?” 했다. 이에 제자들이 “관이 없으면 까마귀나 독수리 떼가 뜯을까봐 걱정됩니다.”라고 하자, 장자는 다시 “노천()에 버리는 것은 까마귀나 독수리 떼에게 뜯어먹도록 주는 것이며, 땅에 묻는 것은 개미 떼나 땅강아지가 먹도록 내어주는 것이니 이 둘이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것은 마치 이쪽에서 식량을 빼앗아 저쪽에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라고 말했다.

혜시(惠施), 기원전 360?~기원전 260?

혜시(惠施), 기원전 360?~기원전 260?

이와 비슷한 일화가 또 있다. 어느 날 장자의 아내가 죽어 혜시4)가 문병을 왔는데, 정작 장자 자신은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시가 그 이유를 묻자, “나의 아내는 본래 삶도 형체도 없었고 그림자조차 없었지 않은가? 이제 그녀도 죽었으니, 이는 춘하추동의 변화와 같은 것이네. 그녀는 아마 거실 안에서 단잠을 자고 있을걸세. 내가 처음에는 소리 내어 울었는데, 울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가소롭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네.” 하고 대답했다.

이것은 비관과 낙관을 한꺼번에 융화시킨, 일종의 달관주의()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진인()5)은 삶을 기뻐하지도 않고, 죽음을 미워하지도 않는다. 태어남을 기뻐하지도 않고, 죽음을 거역하지도 않는다. 그저 무심히 자연을 따라가고, 무심히 자연을 따라올 뿐이다.

종리의 고성 성벽 근처

종리의 고성 성벽 근처장자와 혜시가 문답을 주고받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안후이성(安徽省)에 소재해 있다.

장자에 의하면, 모든 차별이나 변화는 결국 인간의 유한한 지식으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지식의 한계를 깨닫고 쓸데없는 시비()를 버려야 한다. 이러한 사상은 유명한 <나비와 장주()>의 예화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어느 날, 장자가 꿈을 꾸었다. 그런데 스스로 나비가 되어 이 꽃 저 꽃을 다니며 노닐다가,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 꿈에서 깨어난 장자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장자가 꿈속에서, 자신이 나비로 변한 것을 보았는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면서, 스스로 장자로 변한 것을 보았는가?”

이 말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꿈을 꾸다가 나비로 둔갑했는지, 아니면 원래 나비였던 자신이 인간 장자로 변한 것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장자와 나비는 원래 구별이 있다. 장자는 인간이고 나비는 곤충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지 둘이 함께 융화되어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경지를 우리는 물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물화 이후의 장자는 천지와 한 몸이 되어, 무소부재()6)의 정신으로 변해버린다. 그는 이제 조물주와 함께 거닐다가 세속에 돌아오기도 하고, 이리저리 흘러 다니면서 풍운조화()7)를 일으키기도 한다.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철학자, 장자 본문 이미지 3

그러한 그에게, 과연 인간세계의 영고성쇠()8)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속을 초탈해버린 최고조의 경지에서 봤을 때 잠시잠깐 출세를 하면 무엇 하며, 돈을 번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시험에 합격하면 어떻고, 또 낙방한들 어떨까?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하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겠는가? 건강하게 오래 살면 얼마나 더 행복할 것이며, 병들어 조금 일찍 죽은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 말이다.

철학논술

Q. 다음을 장자와 사상에 견주어 생각해보자.
1. 히틀러가 유대인 육백만 명을 학살했을 때에도, 한국전쟁으로 민간인 수백만이 죽었을 때에도 이 세상은 끄떡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2. 내가 대학입학시험에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지구는 그저 돌아갈 뿐이다. 이 일이 과연 분통 터질 일일까?

대붕과 매미의 차이

장자는 <소요유()> 제1편에서, 대붕()의 우화를 든다. 옛날 북쪽 바다에 곤()이라고 하는 커다란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나중에 대붕으로 변했다. 그 새는 등 넓이가 몇천 리에 이를 만큼 엄청나게 큰데, 구만 리나 되는 높은 공중에 치솟아 오르며 삼천 리나 되는 파도를 일으키면서 남쪽의 천지를 향해 곧장 날아갔다. 이때, 땅에서 매미와 비둘기가 그를 비웃으며 말하기를, “우리는 기껏 느릅나무9)나 다목10)에 올라 머물기 때문에, 잘못되어봐야 땅바닥에 동댕이쳐지는 일이 고작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구만 리나 솟아올라가 그 먼 길을 가려 할까?” 했다.

이에 대해 장자는 “우리가 교외로 나갈 때 가까운 곳으로 가는 사람은 세끼의 식사 준비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백 리 길을 가는 사람은 하룻밤을 꼬박 걸려 곡식을 찧어 준비해야 하고, 천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동안이나 식량을 모아야 한다. 그런즉 이 조그만 날짐승들이 어찌 대붕의 큰 뜻을 알 수 있겠는가? 아침에 돋아나 저녁에 스러지는 버섯은 새벽과 심야의 경치를 모르기 마련이고, 봄에 나서 여름에 죽는 매미는 초봄과 늦가을의 풍경을 모를 수밖에 없다. 옛날에 대춘(椿)이라 불린 나무는 팔천 년 동안은 봄이고, 다시 팔천 년 동안은 가을일 만큼 오래 살았다. 그런데 불과 팔백 년을 산 팽조()를 두고 사람들은 오래 살았다고 하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전설 속의 인물, 팽조

전설 속의 인물, 팽조육종(陸終)의 세 번째 아들로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세 살 때 어머니마저 죽어서 고아가 되었다. 그러나 요순 시대를 거쳐 주왕 대에 이르기까지 팔백 살을 살았다는 신선이자 장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생 마흔아홉 차례나 아내를 잃었고, 쉰네 명의 자식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장수한 비결은 양생을 중히 여기기도 했으나, 본래 타고난 성품이 온화했고 잡다한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헛된 명예나 재물을 추구하지도 않았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또 화려한 옷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직 장생하는 법만을 추구했으며, 늘 수정과 운모가루, 그리고 사슴뿔을 먹었다고 한다. 어디를 가든 말을 타지 않고 걸어 다녔으며, 손에는 돈이나 식량 등 어떤 것도 지니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무엇을 자랑하거나 괴이한 일을 하지도 않았으며, 또한 얼굴에는 노여움이 없이 항상 웃는 모습이었다.

하늘을 솟구치며 날아가는 그 대붕은 어쩌면 장자 자신을 일컬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초인적인 지혜와 안목과 기백을 어찌 세속의 작은 날짐승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이처럼 장자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훨훨 날아서 자신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잠잠히 머물고, 기분이 좋을 때는 몇 마디 조롱하며 웃어버린다.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철학자, 장자 본문 이미지 4

유가에서는 요순()과 같은 성인이 나와 인의도덕의 정치를 해주기를 바랐고, 노자는 무위자연의 정치를 기대했다. 하지만 장자는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한 신인()의 경지를 말했다.

“신인은 그 몸의 먼지나 때, 쭉정이나 겨만 가지고서도 요순과 같은 성인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거늘, 무엇 때문에 하찮은 천하 따위를 위해 고생하려 하겠는가?”

이러한 말을 통해, 우리는 노자를 능가하는 장자의 초월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백이숙제나 도척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장자의 윤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장자는 첫째, 유가의 인위적인 도덕을 비판하고 나선다. 공자가 초나라에 갔을 때, 광접여()라는 사람이 불렀다는 노래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말지어다, 말지어다. 도덕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위태로운지고, 위태로운지고. 땅에 금 긋고 달리는 것은.”( )

시대에 따라, 나라에 따라 많은 도덕과 윤리가 있다. 임금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던 시대가 있었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소리 높이 외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우리는 반공과 애국심 대신에 세계화니 글로벌이니 하는 말들이 언론매체를 도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처럼 가장 선이라 여기던 것들이 세월에 따라 박물관의 박제처럼 변하기도 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유가의 도덕을 비판한 장자의 철학을 배우는 것이다. 도덕을 사람에게 강요하고 주입시키는 것은 마치 땅에 금을 그어놓고 달리게 하는 일처럼 위험하고 답답한 일이다.

어느 날, 말()을 잘 다룬다는 백락()이란 사람이 말들을 죽 늘어세운 채, 그 털을 지지고 몸에 낙인을 찍어 외양간에 매달아놓았다. 그런데 열 마리 중 두세 마리가 죽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백락이 말의 타고난 본성에 어긋난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둘째, 장자는 생명 존중의 윤리를 주장한다. 백이()11)는 대의명분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고, 도척()12)이란 자는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좇아 살다가 동릉산 위에서 처형을 당했다. 이 두 사람은 비록 죽은 원인이 서로 다르지만, 목숨을 해치고 타고난 본성을 상하게 한 점에서는 같다. 그런데 어찌 백이만 옳고 도척을 잘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는 마치 책을 읽는 바람에 양을 잃어버린 남자 종이, 노름을 하다가 양을 잃어버린 여자 종보다 결코 낫지 않음과 마찬가지다. 비록 두 사람이 한 짓은 다르지만 양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오늘날에 빗대어 말하자면, 국가 민족을 위하는 충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애국지사나 변심한 애인 때문에 한강에 뛰어든 청년이나 별반 다르지 않으며,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는 짓이나 독도 수호를 외치며 행하는 단지()나 똑같다는 뜻이다. 물론 그 의미를 따지자면 비교할 수조차 없겠지만, 결국 장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생명을 지키고 몸을 보존하는 일보다 더 위대한 도덕은 없다는 것이다.

셋째, 장자는 본성에 따라 사는 분수의 윤리를 주장한다. 예컨대,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다섯 발가락 중에 두 개가 서로 붙어 있어서 네 발가락이어도 장애자라 생각하지 않고, 손가락에 하나가 더 있다 할지라도 육손이라 여기지 않는다. 길다고 그것을 여분()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짧다고 그것을 흉으로 여기지 않는다. “물오리는 비록 다리가 짧지만 그것을 이어주면 도리어 괴로워하고, 학의 다리는 길지만 그것을 잘라주면 오히려 슬퍼한다.”( ) 본래부터 긴 것을 잘라서도 안 되지만, 본래부터 짧은 것을 이어주어도 안 된다. 태어난 대로, 생긴 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뜻이다.

하늘로부터 타고난 자연은 모든 사물 안에 깃들어 있으나, 사람이 억지로 꾸미는 일은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가령, 소와 말에게 각기 네 개의 발이 있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해당하고, 그 말머리에 고삐를 달고 쇠코에 구멍을 뚫는 일은 사람이 만들어낸 일이다. 이와 같이 일부러 천성을 망쳐서는 결코 안 되며, 사람이 자신의 명성 때문에 본래부터 타고난 덕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철학자, 장자 본문 이미지 5

장자에 의하면, 우리가 자연적인 본분을 잃었을 때 고통과 비극이 찾아온다고 한다. 옛날, 바닷새가 날아와 노나라 수도 근교에 멈췄다. 어느 제후가 이 새를 맞이하여 종묘()13) 안에서 술을 마시게 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게 하며, 고기 음식을 갖춰 극진히 대접했다.

그러나 이 새는 그만 눈이 아찔해져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았고, 한 조각의 고기도 먹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불과 사흘 만에 그만 죽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제후가 자기 자신을 보양()하던 방법으로 새를 돌봤을 뿐, 그 새 본래의 방법으로 보양하지 않았던 탓이다. 물고기는 물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지만, 사람은 물속에만 있으면 죽고 만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타고난 능력과 바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도 능력과 취미가 서로 다르다. 공부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 있고, 운동이나 예술에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각자 소질에 맞춰서 그에 맞는 교육을 하면 된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아이를 억지로 책상 앞에 앉혀놓거나 음악적 재능이 전혀 없는 아이를 세계적인 음악가로 키우기 위해 밤샘 과외를 시켜본들 그 효과가 제대로 나겠느냐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의 비극은 바로 이 점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 일렬로 늘어서게 한 다음, 동일한 골인 지점을 향해 뛰도록 하는 이 교육은 한시바삐 개선되어야 한다. 장자는 인간이 자기 본성과 능력에 따라 분수를 지켜나갈 때, 진정 평안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철학논술

Q. 다음의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해, 장자라면 뭐라고 말할까?
1. 돈 때문에 부모를 홀대한다거나 출세를 위해 친구를 배신하는 행위
2. 자신의 행복을 위해 병든 남편(혹은 아내)이나 자녀를 버리고 떠나는 행위
3.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이른바 동성애 행위
4. 남자가 여자로, 또는 여자가 남자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일
5. 정자와 난자가 서로 만나 잉태되는 것이 아닌, 체세포를 떼어내 생명을 만드는 작업

신령한 거북이라면

장자는 벼슬자리 같은 것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가 중국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것은 공자처럼 정치 무대를 찾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묵자처럼 사회 개혁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욕망에 허덕이는 인간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세상 풍토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웃어버리고자 했을 뿐이다.

송나라의 조상()이라는 사람이 진나라로 사신의 길을 떠날 때, 불과 몇 량의 수레로 출발했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선물이 가득 찬 백여 량의 수레를 이끌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장자에게 하는 말이 “나는 누추한 집에서 사는 재주는 없어도, 한마디 말로 군주를 기쁘게 하여 백 량의 수레를 끌고 오는 재주는 있다오.” 했다.

이에 장자는 “진나라 왕이 언젠가 병이 들어 의사에게 고름이 가득 찬 종기를 손으로 터뜨리면 한 량의 수레를 선물로 주고, 입으로 빨면 다섯 량의 수레를 준다고 했소. 즉 그 방법이 더럽고 추할수록 수레를 많이 얻어올 수 있었단 말이오.”라고 했다. 이것은 후안무치()한 행위로 명예와 부귀를 바꿔온 데 대한 통렬한 비난이었다.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철학자, 장자 본문 이미지 6

하루는 초나라 왕이 예절을 갖춰 장자를 초빙하고자 그에게 두 대부()14)를 보냈다. 마침 물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그에게, 두 사람이 국왕의 부름을 전했다.

이에 장자는 태연하게 말하기를, “초나라에 신령한 거북이 한 마리 있다는데, 그것은 죽은 지 이미 삼천 년이나 된다 하오. 초나라 왕은 그것을 비단으로 잘 싸서 태묘()15) 속에 간직하고 길흉을 점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 거북이 정말로 신령스럽다면 죽어서 그 껍질로 사람의 존경을 받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 치며 살겠소?” 했다. 즉 까닥 잘못하여 정변에 휩쓸린 탓으로 몸이 죽고 난 후에 찾아오는 인간의 명예는 빈껍데기와 같이 무가치할 뿐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보면 적극적으로 역적모의에 가담했다가 실패하여 스스로 목숨을 잃고 집안마저 쑥밭이 된 경우도 있지만, 이편저편을 갈라 파당을 짓고 있다가 뚜렷한 잘못도 없이 그야말로 억울하게 죽어간 경우도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장자는 염려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므로 진정한 현자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그 바른 중용의 길’을 따라감으로써 스스로 목숨을 보전할 뿐이다.

철학논술

Q. 다음의 경우를 비교하고 어느 편이 더 옳은지 깊이 생각해보자.
1. 부도덕한 권력자에 빌붙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아부함으로써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과 권력의 압력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정치 철학을 지켜나가는 사람
2. 일제에 아부하여 고관대작을 지낸 사람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패가망신한 사람
3. 커닝을 하여 성적을 올린 친구와 자신의 실력으로 했지만 성적이 떨어진 친구
4. 아버지의 도움으로 군대 면제를 받은 사람과 최전방에 배치되어 죽도록 고생한 사람
5. 권력자의 지시에 따르는 국회의원과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국회의원

변론의 상대가 없음을 통탄하다

장자는 생사와 시비, 권세와 부귀 등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달관적 인생관의 소유자였다. 그는 특히 유가 사상을 비판하는 대신, 노자의 입장을 택했다. 사물 간의 차이점만을 따지는 모든 지혜들을 타파했으며, 스스로 자유분방함을 실천하며 천지일체의 묘리를 몸소 체험했다. 그렇다고 장자가 끝까지 이 세속을 혐오한 것은 아니었으며, 인간세계에 돌아와 현실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긍정했다.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철학자, 장자 본문 이미지 7

장자는 이 세상을 완전히 벗어나고자 하기보다는 여유 있게 살아가고자 했다. 어쩌면 그는 우리 인간이 세상일에 몰두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며 사는 것이 도리어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장자는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논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인 혜시를 만나면 통쾌한 논전을 곧잘 벌였다. 그러나 그 혜시는 일찍 죽고 말았다. 장자는 그와의 옛정을 못 잊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초나라에 사는 어떤 사람이 자기 코에 파리 날개처럼 얕게 횟가루를 묻히고는 그것을 석수장이에게 정으로 쳐서 떨어내라고 했다. 이에 석수장이는 코에 정을 대고 망치로 쳐서 횟가루를 떨어냈으나, 코는 전혀 다치지 않았다. 송나라 왕이 그 말을 듣고 석수장이를 불러다가 자신의 코에 횟가루를 묻혀 그것을 떨어내도록 했다. 그러나 석수장이는 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재주를 펴볼 수 있는 상대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석수장이는 바로 나이고, 그 상대자는 혜시다. 나는 변론의 상대를 잃어버렸도다!”

《장자》

《장자》이 책에는 장자와 혜시가 강가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에 대해 논쟁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혜시가 죽은 후, 장자는 더 이상 자신과 변론할 사람이 없음을 매우 애석해했다.

논쟁을 벌일 때에는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싸우기도 했지만, 장자는 그 혜시가 있어서 자신의 논리를 맘껏 펼칠 수 있었다. 혜시는 장자의 철학을 전개해갈 수 있는 징검다리이자 일종의 촉매제였다.

바둑을 두거나 운동 경기를 할 때에도 자신의 실력에 맞는 상대방이 있어야 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것처럼, 실력의 라이벌이란 내가 쳐부숴야 할 적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아끼고 사랑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들, 즉 공자 · 묵자 · 노자 · 장자는 혼란한 세상에 있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세상을 바로잡아보자는 생각에는 공통적이었다. 그렇지만 그 방법은 서로 달랐다.

공자와 묵자는 직접 사회 개혁에 뛰어들어 대를 쪼개듯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노자와 장자는 문제들이 자연적으로 치유되고 미화되기를 바랐다. 가령 병이 났을 때 어떤 의사는 과감하게 수술을 해서 낫게도 하지만, 어떤 의사는 자연적인 치유를 권장하기도 한다.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지만 그 처방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노자와 장자 사이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컨대 노자가 자연의 원리와 함께 그 응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면, 장자는 우리 인간이 천지(대자연)와 한 몸이 되는 원리를 설파했다. 물론 장자에 대해 허무주의적이라거나 회의주의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세상사와 정치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평은 역설적으로 그에게도 격렬한 시비의 관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아예 세상사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구태여 비웃거나 비판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이미지 5

  • 장자
  • 장자의 초상화
  • 벽에 새긴 장자의 모습
  • 「장자몽접도(莊子夢蝶圖)」
  •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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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철학자, 장자 (청소년을 위한 동양철학사, 2009. 1. 30., 강성률, 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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