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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가 먼저냐★사람이 먼저냐★동백양택음택★용인신생아작명●

海印導師 4 7,607 2019.01.0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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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먼저 海印導師가 풍수지리 학문에 관심을 가진 내력과 이유를 설명한다. 즉, 사람마다 그의 타고난 사주팔자로 인하여 길흉화복이 다르게 적용되는 현실을 목격한 후, 관련 명리학문 공부를 접하여 시작한 지 약 10여 년을 지날 즈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무릇 명리학문은 정법의 이치대로 꾸준하게 관련 이론을 습득하면서 실관 즉, 이론과 실제를 적용★비교★탐구하여 어떤 감정 격식의 틀을 확보하게 될 때 즉, 특정 개인이 탄생하는 시점을 포착하여 그 중생의 현생에 당면하는 吉凶禍福(길흉화복)과 壽命長短(수명장단)과 富貴貧賤(부귀빈천)과 善惡美醜(선악미추)를 판단할 수 있지만, 특정 개인의 타고난 사주팔자를 바꾸거나 고칠 수 없는 고착된 用★不用의 학문일 뿐이라고 개인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판단하면, 과연 원천적으로 살펴볼 때, 특정 개인의 사주팔자를 총체적으로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核心(핵심) 원인과 인연의 법칙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은 苦惱(고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후 ●그 구체적인 답변을 얻기 위한 실행 방법으로 거대한 바위 巖山(암산)인 道峯山(도봉산)과 佛巖山(불암산)의 天機(천기)가 모이는 특정 장소를 선택하여 같은 시점으로부터 약 석달 열흘 정도 하단전호흡법을 시행하면서 天地神明(천지신명)에게 그 답변을 渴求(갈구)하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마침내 천지신명의 응답이 있었다. 그날도 海印導師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간단한 세면 후, 道服(도복)을 차려입고 하단전 호흡법 수련을 실행하였다. 약 한 시간 정도의 수련을 끝내고 앉은 자리에서 조용하게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 非夢似夢(비몽사몽) 간에 눈앞에 글씨가 나타났다. 꼭 TV 화면 글씨를 보는 것과 같았다. 그 글자는 다음과 같이 찍혀 나갔다. ★인간에게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유골뿐이다★ 그때 海印은 두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그래서 그다음 날 바로 한국역학교육학원장님이신 故(병신년 頃, 향년 93 歲를 일기로 作故작고하심) 벽천 김석환 선생님을 찾아뵙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사부님! 대한민국에서 가장 올바른 정통파 풍수지리 사부님을 한 명 소개해 주시길 원합니다.★ 약 한달 후, 송파구 마천동 소재 시장통 사무실에서 명리학원을 운영하고 같은 학원 후배님이신 한국남 씨를 만나서, 그의 소개로 강서구 신월동 모처에 거주하시는 풍수지리 사부님 이준기(신미생 현재 당89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고향 경주 인근의 건천읍 용명리 출신이셨다.

그 당시로부터 전국 팔대 명당(고려개국 충신 신숭겸 묘 등 8곳)을 남헌 이준기 사부님과 함께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간산과 이론과 실습을 겸했다. 당시는 현직 경찰관인지라 토요일과 일요일과 간산실습 당번 근무날은 휴가를 내면서까지 열심으로 풍수지리 공부에 매달렸다.

그 당시 海印導師가 수업 중, 사부님에게 다음과 같은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져서 남헌 이준기 사부님께서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하신 적도 있다. 왜냐하면, 오늘 글을 쓰게 된 제목과 같은 내용의 질문이었다. 즉, ★사부님! 현재까지 전국에 걸친 수많은 명당과 대표적인 팔대 명당을 간산했는데, 이것은 海印의 판단으로는 본말이 전도된 현상이라고 판단합니다.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海印導師의 질문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즉, ★무릇 풍수지리를 배우는 학문적인 입장에서 우리가 그동안 간산한 수많은 명당은 교육적인 가치가 별로 없다고 봅니다. 그 명당의 주인은 이미 당대에 출세한(?) 정승이나 장군이나 재력가나 개국창건자나 개국공신 등의 墓(무덤) 인 데, 그러한 개국공신 창건자나 정승이나 장군의 묘를 간산하는 일은 풍수지리를 배우는 자에게 학습방법론에서 교육적인 효과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한 자는 능히 돈과 권력을 사용하여 당대의 명지관과 명풍수를 고용할 수가 있어서 당연하게 풍수지리 이론 학문상 좋은 터와 땅을 내 마음대로 선정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海印 질문의 핵심을 정리하여 말하자면 이러합니다. 풍수지리 학문상의 명당 발복론=穴藏發福論에 의할 때, 당대의 명당에 묻힐 수 있는 자의 직계 선조(부친이나 조부나 증조부나 모친이나 조모나 증조모 등)의 산소(정승을 낼 풍수지리상 가치가 있는 묘)를 간산하고 공부하는 것이 이치(그래서, 개국창업자·정승·장군·거부 자손이 나왔다란 설명)에 맞을진대, 현재의 풍수지리 공부 방법은 마치 ★숨이 멈춘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은 죽었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 같습니다. 보다 냉정하게 따지자면, 당대의 이름 조차 모르는 학습한 명풍수가 고른 명당을 찾아 다니면서 미주왈고주왈 학습하는 방법은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원인을 따지는 허망한 교수 방법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답변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당돌한 질문을 던진 일이 미안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서 당시 썰렁한 분위기를 마무리했다. 즉, ★그것은 오로지 개인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말을 바꾸어서, 당시 남헌 이준기 사부님께서 약 삼십 여 년 전에 겪은 일화를 소개하여 기록한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소재 구지리(지명 검색을 해보니까, 남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구지리가 안 나왔다. 구담리 뿐이다) 明堂(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약 300여 명을 배출한 명문가 남양홍씨 중시조 묘란다)를 看山(간산)한 사건이다. 남헌께서 안동시 거주 풍수지리 관련 학문을 배우는 후학들의 간청{당소는 남양홍씨 가문의 4대조 묘인데, 당시 묘터를 정한 모 풍수지리가 曰, ★이 자리에 산소를 들이면, 일 년 후에는 장자가, 이 년 후에는 차자가, 삼 년 후에는 삼자가 죽고 난 후, 그의 손자가 정승 반열에 오른다. 묘를 쓸지 말지 상주가 결정하세요★ 이 말을 듣고 고민하던 남양 홍씨 가문의 상주는 당장 이곳 외에 마땅하게 사망한 부친을 모실 자리도 없고, 설마 하고서 위의 某 풍수지리가께서 좌점한 자리에 4대 당해자 부친 시신를 매장하였단다. 그 후, 풍수가의 예언대로 삼 년 차에 4대의 아들 세명(5대)이 연달아 죽고 나서, 무심코 세월이 흐르면서 6대는 정승 반열에 올랐답니다. 그 산소에 대한 자세한 남헌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이 있었다.

원래 옛날부터 明堂을 점지하려면, 그 가문의 3대 윗 조상 산소를 전부 감정하고 난 후, 새로운 산소 자리를 선정하는 풍수지리계의 묘한 전통이 있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의뢰인의 요구에 의하여 설령 명당자리에 점지했을지라도, 그 바로 윗대의 직계조상 자리가 凶堂(흉당)이면, 그 자손에게 흉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단 사망한 당사자의 윗대 산소를 간산 후, 대표적인 흉당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새로운 산소를 들여야만, 타인이 잘못 선정한 선대의 흉당 무덤으로 인한 당해 묘의 좌점을 잘못하였다는 소위 "선무당 사람잡듯, 돌풍수가 가문 망하게 한다"란 덤터기 쓰는 일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소를 간산한 후, 남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즉, ★중시조와 차시조의 상하로 연이은 자리는 소위 정승이 나올만한 명당이다. 그러나 정승이 나온다고 말했다는 4대의 무덤은 벼슬은 없고, 재물은 풍족한 터에 불과하다. 다만, 중시조의 산소를 볼 때, 본산 청룡 줄기 자락에 묻힌 며느리의 산소가 大凶堂(대흉당)이었다. 그 풍수가 며느리가 묻힌 대흉당을 보고나서 그렇게 말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소위 6대째 정승이 나올 수 있었던 풍수지리 학문상의 설명은 이렇다고 본다. 즉, 명당인 중시조 묘의 입수가 5절이 끊어진 연고로 5대는 필망하고, 6대째 발복했다는 그 전설은 상당하게 타당성이 있는 말로 들린다고 추론한다.

최근래 와서, 사망한 인간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남북한 총 팔천 만 명 이상) 대한민국 국토가 제아무리 산악지가 많을지라도, 죽은 인간의 시신을 매장할 만한 장소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할지라도, 날이 갈수록 시신 처리방법에서 埋葬(매장)보다도 火葬(화장)을 선호하고 있고, 넘쳐나는 사망자의 유골을 매장할 명당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자면, 사망자의 火葬文化(화장문화)를 기피할 수 없는 사회적 · 현실적인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

다만, 자손이 조상의 시신을 명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매년 한 번씩 벌초를 시행하는 등의 孝道文化(효도문화) 즉, 자신을 낳아 주고 역사를 이어주는 원천인 조상님 崇慕精神(숭모정신)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왜냐하면, 기껏 자식을 낳고 정성을 다해서 훈육하고 대학원 공부까지 시킬지라도, 나중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화장터로 보내버리는 많은 자식의 행위를 어찌 곱게만 바라볼 수 있겠느냐는 심정이 구체화한 현실이 바로, 은연중에 젊은 사람들이 자식의 숫자를 적게 낳거나 아예 출산 자체를 거부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풍조는 장차 타국의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국력손실로 이어지고 연이어 민족과 사회공동체 유대란 연결 조직망의 끈끈한 믿음이 점차 사라질 위기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산 자의 공간도 부족한데 죽을 자를 위한 인위적인 명당을 전국적으로 조성하여 그곳에 사망한 자의 유체를 매장하라고 권유할 수는 없다. 다만, 적정한 선에서 아이도 낳고(한 부부 한 자녀 내지 두 자녀) 惡疾患(악질환)으로 사망한 자는 화장처리하고, 기타 자연사 등 사망자 시신을 처리할 관련 가족이 선의로 원하는 경우에는 공동으로 시신처리를 할 수 있는 장소(최소한 흉당의 면책지 선정)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최종적으로 海印導師의 관점에서 물상의 전반적인 사물을 냉정하게 관찰한 후 결정적인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이렇다. 즉, 풍수지리상의 地精氣가 인간세계의 특정 名門家(명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당대에 좋은 명당을 고를 수 있는 가문의 재력과 지혜를 활용하여 의식주 중 주거지를 기문둔갑술 길방과 흉방의 원리에 따라서 명당 주택을 건설하고 그곳에 원하는 중생이 편안한 주거지로 거주하면서, 정당한 그의 자손과 후예를 지속적으로 길러낼 수 있는 특정 인간의지로 올바르고 진취적인 이념을 잘 교육한 결과, 


다시 말하자면, 陰宅(음택) 地氣(지기)의 精氣(정기)보다도, 좋은 陽宅(양택) 地氣(지기)의 精氣(정기)를 선택할 수 있는 특정 인간 人間意志(인간의지)가 후손의 사회적인 성패와 개인적인 행★불행에 더욱더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必然的인 ●天機 法則●임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여 기록한다.  끝.


海印導師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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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측에 보이시는 분이 남헌 이준기 풍수지리 사부님이시다. 지난 여름 전 삼성건설 현장소장 죽마고우 신영호 회장님과 함께 전복죽과 청하를 일 잔 마시면서 한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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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海印導師 2019.01.09 07:29
근래에 들어서서 일반인의 경우, 산을 소유한 사람의 숫자가 적고 또한 <일산 일명당혈>이라는 풍수원리에 따라서 소위 터가 없다. 최근에는 유능한 풍수지관을 찾는 일도 뜸하지만, 사실 위의 이론 정립으로 인하여 海印導師의 경우, 개인적으로 음택 선정은 특별하게 인연(친척이나 친한 지인)이 있는 경우 이외에는 함부로 좌점 다시 말해서, 묘자리 좌점 출장을 잘 가지 않는다. 음택 좌점 출장비 출장 조건으로 비용을 만만찮게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택 출장의 경우 언제라도 고객의 바람대로 고객의 부담없는 도움을 주고 있는 중이다.

海印導師 合掌.
海印導師 2019.01.09 08:48
천하의 奇人이자, 벼슬의 차이는 있겠지만, 海印導師와 비슷한 경력자로 官界에도 진출한 경험이 있는 풍수지리가였던 조선조 대학자이시며 "土亭秘訣" 저자로 알려진 이지함 선생님의 산소를 남헌 이준기 사부님을 모시고 간산 공부 차 찾았다. 당소를 방문한 海印導師의 첫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한다. 즉, ★그냥 웃고 말았다★ 왜냐하면, 가족 집단매장지였지만, 명풍수가 좌점한 天下明堂이라 판단한 후손이 따닥따닥 아래로 산소를 이리저리 미어 터지게 들여서, 마치 시골 공동묘지 같은 느낌뿐이었다. 천하의 미련한 중생 같으니라고~~~ㅎ~~~

다만, 이지함 선생님은 海印導師가 평소 특별하게 생각한 사상가로 존경하는 위인이었다. 즉, 자신의 무덤 터를 미리 선정한 풍수지리 관련 철학자요! 思想家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도 느낀 것이 있었던지(?) 비문은 간략하게 써라고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이지함 선생님 직계나 방계 후손 가문의 경우도 그렇다. 자신이 관계로 진출해서 나름 경제적인 기반을 닦고 그 후광으로 그의 사후 후손들도 유명세를 탓을 것이고, 아마도 풍수지리 좌점 등으로 전국에 걸쳐서 富를 축적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래서 그러한 집안의 경제를 바탕으로 후손을 교육시켰기 때문에 후손이 줄줄이 벼슬자가 나올 수 있었다고 냉정하게 판단할 따름이다. ~~~흠~~~ 끝.

참고로, 백과사전상의 이지함 선생 관련 글을 한 글자만(文人石을 문석인으로 오류 기재함) 고쳐서 그대로 옮긴다.

즉,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舟橋面)고정리에 있는 이지함 묘는 생전에 미리 터를 정해두었다고도 전해지며, 이지함의 3형제가 모친의 상을 당하여 선영의 묘를 이장할 자리를 찾다가 이곳이 명당임을 알았다고도 한다. 이지함의 형제와 가족이 함께 있는 가족묘로 조성이 되어 있으며, 이지함의 묘는 봉분 둘레 10m, 높이 1.6m로 묘소에는 비석과 문석인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진 비석은 직사각형의 대좌와 비신이 있다. 비신은 높이 132㎝, 너비 52㎝, 두께 17.8㎝이며, 전면에는 ‘土亭先生李公之墓 恭人完山李氏俯左’라 음각되어 있다. 낮은 산허리에 있으며, 보령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이다. 유언대로 비문은 간략하고 文人石은 치장이 거의 없이 매우 검소하다.

海印導師. 合掌.
海印導師 2019.01.09 09:15
혹시 독자께서 위 글을 읽은 후, 잘못 이해할까 우려하는 마음에서 한 마디 덧 붙인다.

그러나, 대흉당이나 중흉당이나 소흉당의 경우는? 좌우지간 천하의 흉당에는 죽은 인간의 시신을 매장하는 분묘를 들이면 안 된다.

과학적인 논리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직접 海印導師의 눈으로 흉당에 직계 선조를 모신 가문의(친척과 지인과 고객님 등 여러 명) 자손이 當하는(청춘피살, 단명, 청년 사고사망, 청소년 교통사고, 유업 파산, 환갑 전 중질환사망, 악질환 투병, 이혼, 중혼 등) 흉한 결과를 똑똑히 지켜본 바, 틀림 없음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

海印導師.
海印導師 2019.01.09 10:01
참고로 이준기 선생님에 대해서 한 마디 더한다.

선생님께서 서울에서 활동중이실때 바로 음택 풍수지리 학문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신 훌륭하신 건축공학박사 박시익님께서 남헌 이준기 선생님의 8기 문하생으로 사사하였다라고, 며칠 전에도 찾아뵙고 kj2920 신영호 전 삼성건설 소장님과 함께 장어탕을 함께 하신 이준기 선생님께서 직접 말씀하였다.

그래서 국내의 모든 풍수지리학 석사와 박사는 건축공학 풍수지리 석사 박사로 지칭되고 있다. 

海印導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