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華世界2★용인철학관★용인신생아작명소★海印導師●
大抵 未來 彌勒佛이 枉臨하는 龍華世界란?
내용 : 백과 사전상의 용화세계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즉, 미륵불의 정토. 미륵은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수행하다가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예언을 받고 목숨을 마친 후 도솔천에 태어나 현재 거기서 수행 중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 이 세상에 내려와 화림원(華林園)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다고 기술함.
그러면 "兜率天"은 어디인가? 즉,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欲界) 6천(六天) 중의 제4천. 도솔천의 어원 해석으로는 ‘만족시킨다’라는 의미로 설명하여 지족천(知足天) ·묘족천(妙足天) ·희족천(喜足天), 또는 희락천(喜樂天) 등으로 번역한다. 그 내원(內院)은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이라고 하며, 석가도 현세에 태어나기 이전에 이 도솔천에 머물며 수행했다고 한다.
도솔천에는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이 있는데 내원에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머물고 외원에는 천인들이 오욕(五欲)을 만족하며 머물고 있다. 미륵보살은 내원 궁에서 설법하며 인간이 사는 세상인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하생(下生)하여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때 미륵이 내려온 인간 세상은 이상적인 세상이 되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교화시켜 성인이 되게 하고 열반에 든다고 한다. 따라서 도솔천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로서, 정토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미륵보살 신앙은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서 삼국시대에 크게 융성하였다. 新羅時代 원효는 도솔천에서 왕생할 수 있는 수행 방법을 제시하였고 특히 백제 무왕은 미륵보살이 인간 세상에 하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익산에 미륵사(彌勒寺)를 세웠다고 전한다.
海印이 나름 冷情하게 判斷하건데, 佛敎는 깊이 들어가면 원래 鬼神을 믿는 宗敎가 아니고 物敎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러한 方便品의 敎理를 읽고 나면 기독교나 기타종교의 鬼神 論理 根據를 준 것이 바로 佛敎의 未來 “龍華 世界”란 느낌이 문득 들어서 이렇게 감히 몇 자 남긴다.
사실 종교에서 鬼神論(귀신론)을 처음 거론한 사람은 옛날 페르시아 지방에서 발흥한 태양신을 신봉하는 짜라투스트라(생몰연대는 불확실하다. 기원전 6,000년에서 600년으로 추정한다)가 창교한 "조로아스터교"에서 출발하였다. 필연적으로 닥치는 인간의 사망후에 육체는 썩어 없어질지라도 靈魂은 因果業報(인과업보)에 따라서 還生(환생)을 거듭하는 不滅(불멸)하는 존재라는 황당하지만 인간이 듣기에 아름답고 그를듯한 종교적인 이론을 만들어서 후세에 전했다. 막말로 極强(극강)의 금속 金剛石(Diamond)다이아몬드 조차도 실험실의 치열한 고온에 분해될진대 不滅이라니??? 솔직하게 말해서, 웃기는 소리가 아닌가여?
그러한 종교적인 이론에서 파생한 것이 바로 삼생론(전생·현생·래생)이었다. 삼생론이 더욱 발전하여서 전생에 죄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다음 생에 전생의 인과업보에 따라서 현생의 지위와 길흉화복이 정해진다는 필연적 인과응보론이 만들어졌다. 진실로 인간의 상상력은 옛날부터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이론과 세계를 창조하면서 최종적으로 모든 종교에서 이러한 황당한 이론을 빌려서 무조건 종교를 믿게하는 공갈과 협박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외계행성은 태양에서 4.37광년이 떨어져 있다.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 중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 알파 센타우리 (https://namu.wiki/w/%EC%95%8C%ED%8C%8C%20%EC%84%BC%ED%83%80%EC%9A%B0%EB%A6%AC)라고 말한다.
천문학에서 우주의 반경의 크기를 약 460억 광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총 지름은 930억 광년으로 추론한다. 그냥 우주의 크기는 무한하다고 말함이 정론이다. 막말로 추론하는 총 지름 930억광년이 다시 930억 광년으로 펼쳐저 있을 수도 있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뛰어난 제임스 웹 망원경의 관측 가능한 거리는 약 93억 광년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그냥 솔직하게 만고의 어머님이신 地球위에 두 발을 디디고 무한한 창공을 향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기회를 가진 것을 천운의 행복이라고 판단하고 각자 주어진 운명대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그것으로 인간의 탄생과 사망은 소기의 목적을 충분하게 달성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모두 "순간을 영원처럼" 행복하시기를 축수 염원합니다. ~~~ㅎㅎㅎ~~~觀世音菩薩!!!!! 南無阿彌陀佛!!!!!!
海印導師 合掌.
海印導師의 종교관을 밝히겠다. 즉, 나름 得道한 처음 시점에서는 모든 종교의 무가치성과 해악성을 강조했다. 시간이 흐르고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天下 선량한 사람을 제도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이렇게 설파한다.
즉, “모든 사람 취향의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다만 인간이 종교를 가지고 취하는 선까지만 인정한다. 종교의 종사자가 이상한 마음과 흑심으로 종교이론을 빙자하여 사람을 지배하거나 아니면 소위 각종 재물과 여성의 정조와 용역의 제공을 가로채는 線은 절대적으로 排斥(배척)한다.” 쉽게 말해서 천하 중생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각자 스스로 타고난 제 분수를 잘 알고나서 "순간을 영원처럼" 잘 살라는 말씀이다. “인간은 인간으로 탄생함에 태생부터 사망까지 인간임을 순수하게 인정하고 생명 다시 말해 호흡이 주어지는 시간까지 나름 최선을 다하여 잘 살아가면, 천하에서 거의 모든 것을 성취한 것으로 추론한다. 그것뿐이다.
또한, 나의 개인적인 솔직한 견해를 설파하겠다. 인간의 雄大(웅대)한 상상력이 오늘날의 과학발전과 의학발전과 사회발전의 토대가 된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종교적으로 그야말로 좀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위 兜率天(도솔천) 관련 설파는 그야말로 황당한 캐소리 구라성 낭설을 푼 것임이자 진면목임은 거의 확실하다. 다만, 인간의 유흥과 생존하는 재미를 위해서 일백 이십오년도 잘 못채우고 사는 인생을 마냥 영원하게 살 것처럼 자신과 이웃과 가족을 속여가면서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술술 잘 풀어제끼고 있다라고라. 실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냥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독특한 상상력(想像力) 분야의 재미성 분야로 관조(觀照)할 뿐인 가소로운 작태일 뿐이로다.~~~으하하하~~~ 끝
URL : https://ko.wikipedia.org/wiki/%EB%8F%84%EC%86%94%EC%B2%9C
도솔천(兜率天, Tuṣita)은 고대인도(불교)의 세계관에서 천상(天上)의 욕계(慾界)중 네 번째 하늘나라로, (天上 4,000년=人間世 584,000,000년)의 머무름의 기간을 갖는다.
도솔천은 수미산(須彌山, Sumeru mountain) 정상에서 12만 유순(由旬,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 yojana) 떨어진 곳에 있다. 도솔천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나뉜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이라고도 하며,석가모니가 남섬부주(南贍部洲, 인간세계)에 내려오기 전에 머물던 곳으로, 현재는 미륵보살이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리며 머무르고 있는 곳이다. 외원은 여러 천인(天人)이 모여 행복과 쾌락을 누리는 곳이다. 德業(덕업)을 쌓고 佛心(불심)이 깊은 사람만이 죽어서 도솔천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하며, 때로는 문학에서 정신적 이상향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URL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03032&cid=50292&categoryId=50292
미륵불의 정토란? 미륵은 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수행하다가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예언을 받고 목숨을 마친 후 도솔천에 태어나 현재 거기서 수행 중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 이 세상에 내려와 화림원(華林園)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다고 설파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용화세계[龍華 世界]
#용인신생아작명소, #용인철학관, #용인철학원, #기흥신생아작명소, #동백신생아작명소, #신갈신생아작명소, #강남대신생아작명소, #죽전신생아작명소.
우리들이 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라고 말했다.
海印導師 合掌.
1. 개요[편집]
근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신학자, 그리고 계산기의 발명자. 그의 유고집《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업적 중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자면 파스칼의 삼각형과 확률론, 계산기 발명이 있다.
1.1. 수학의 신동[편집]
블레즈 파스칼은 1623년 6월 19일 프랑스의 클레르몽페랑 지방에서 루앙의 세무감독관 에티엔 파스칼(Étienne Pascal)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의 신동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특출난 재능을 드러냈다. 그 행보를 살펴보면...
10살 ~ 11살 때 가정교사에게 기하학을 주제로 하여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여가에 노는 시간을 아껴서 수학을 공부했다.
12살 때는 기하학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을 오직 자력으로 발견하여 아버지 및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를 계기로 에티엔은 어린 파스칼에게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을 주고 본격적으로 기하학 공부를 계속하게 격려했다.
13살 때 파스칼의 삼각형을 발견했다.
14살 때 프랑스 수학자 단체(現 프랑스 학술원)의 주 정기 회동에 참가하였다.
16살 때 파스칼의 정리를 증명했다.[1]
external/upload....
19살엔 세무 감독관[2]으로 일하며 일일이 수작업으로 수많은 양의 세금을 계산하느라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톱니바퀴를 이용한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를 만들었다. 야사에 따르면, 당시 프랑스의 화폐 제도는 10진법이 아니라 20진법/12진법을 동시에 쓰고 있어서 화폐의 계산이 매우 힘들었다고. 파스칼의 계산기는 위와 같이 상자 모양으로 되어 있고 숫자판이 한 자리씩 띄엄띄엄 일렬로 있으며 10갈래의 바큇살이 있는 바퀴가 숫자판의 자릿수만큼 일렬로 배치되어 있어서 바큇살을 돌리면 숫자판의 드럼이 돌아가는 것으로 계산을 수행하는 원리이다. 비록 이때는 덧셈/뺄셈만 가능했고 그나마도 덧셈과 뺄셈을 전환하려면 숫자판 가리개를 올렸다 내리는 식으로 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컴퓨터 발달사로 봤을 때는 매우 획기적인 물건이다.
21살에는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의 기압에 관한 저서에 관심을 가지고, 수은기둥을 사용한 일련의 실험으로 유체의 압력과 부피에 관한 기초를 다지는 파스칼의 법칙을 완성했다.
그야말로 수학사에서 빠지려야 빠질 수가 없는 천재임에 틀림없는 인물이다.
1.2. 요절한 천재[편집]
1654년 말경에 그는 신학에 몰두하게 되었다. 말년에는 치통과 두통에 시달리며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 고통스럽게 보낸다. 비록 이 두통을 잊고자 사이클로이드를 연구하여 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1662년 8월 19일 누이의 집에서 경련 발작으로 단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3]
《팡세》 같은 저서를 읽어본다면 교부 철학이나 기독교 이론, 믿음 자체에 정면 도전을 하는 당시로는 꽤나 파격적인 사상의 면모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를 부정하는 내용은 아니다(파스칼은 금욕주의 성향의 가톨릭 분파인 얀센파의 일원이었다). 기독교의 일부 분파나 인물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어서 초판에서는 교회의 명령으로 이런 부분이 빠졌다. 인간 본연의 구원과 해답에 대한 묵상 여러 가지를 담은 《팡세》는 한번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2. 팡세[편집]
파스칼의 유고집. 팡세[4]는 한 권의 책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파스칼이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과 연관된 단상들을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 삼아 쓴 것이다. 팡세의 초판은 파스칼이 세상을 떠난 지 7년 만인 1669년에 발행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인간 이성의 한계와 불완정성을 강조하였다.
이성의 마지막 단계는 그것을 넘어서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깨닫는 데까지 나가지 못한다면 저급할 뿐이다. 만일 자연적 사물들이 이성을 넘어선다면,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Blaise Pascal, Pensées, trans. A.J Krailsheimer (London:Penguin, 1966), p.188 《팡세》(을유문화사)
파스칼이 "팡세"를 집필한 직접적인 동기는 ‘성형(聖荊)의 기적’ 이라고 전해진다. 파스칼의 누님인 질베르트 페리에 부인이 "블레즈 파스칼의 생애"에서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1656년 3월 24일 내 딸 마르그리트 페리에(Marguerite Pèrier: 파스칼의 조카)에게 기적이 일어난 거에요. 3년 반 동안이나 앓아 오던 누낭염(涙囊炎)이 더욱 악화되어 실명(失明)의 위기에까지 갔고, 눈뿐만이 아니라 코와 입에서까지 고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 눈병은 지독한 악성 질환으로서 파리의 일류 외과의사와 그 밖의 어느 누구도 치료를 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의 눈이 성형(聖荊[5])에 닿는 순간 말끔히 나아 버린 거에요. 이 기적은 세상 사람들이 시인하는 바이며, 프랑스의 유명한 의사들이 입증하는 것으로 교회들도 엄숙히 인정했습니다. 동생(파스칼)은 그 기적을 목격한 순간 그리스도의 권능에 숙연해지는 것이었습니다.
3. 드 메레의 문제[편집]
파스칼은 절친한 친구이자 기사, 도박사인 드 메레 de Mere(본명 앙투안 공보 Antoine Gombaud)에게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는다.
“친애하는 파스칼에게, 나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네. 실력이 비슷한 A와 B가 각각 32피스톨(화폐 단위)을 걸고 게임을 했어. 총 5판에 3판을 이기면 64피스톨을 모두 가지기로 했지. 그런데 A가 2판, B가 1판을 이긴 상황에서 일이 생겨 게임을 그만뒀어. 다시 돈을 반씩 나누면 2판이나 이긴 A가 너무 억울할 것 같고, A에게 64피스톨을 다 주면 B가 앞으로 이길 수도 있으니 공평하지 않은 듯하네. 어떻게 해야 공평할까?”[6]
파스칼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했다. A가 이기면 점수는 A : B = 3 : 1 이므로 A는 64피스톨을 갖게 된다. 또 B가 이기면 점수는 A : B = 2 : 2 이므로 A와 B는 각각 32피스톨씩을 갖게 된다. 이 두 상황을 종합할 때, A는 32피스톨을 이미 확보해 놓았고, 나머지 32피스톨을 더 얻을 확률은 1/2이므로 A는 32+32*1/2=48피스톨, B는 16피스톨을 가지면 된다.
파스칼은 자신과 쌍벽을 이루던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에게 자신의 풀이를 보냈으며, 페르마는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A가 2점, B가 1점을 득점한 경우, 앞으로 최대 2번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이때 나타날 수 있는 경우는 모두 4가지로, 두 번 모두 A가 이기는 경우, A가 이기고 그 다음에 B가 이기는 경우, B가 이기고 나서 A가 이기는 경우, 2번 모두 B가 이기는 경우이다. 이 4가지 경우 중 최종적으로 A가 이기는 경우는 앞의 3가지이고 B가 이기는 경우는 마지막 1가지이다. 따라서 A는 64의 3/4인 48피스톨을 갖고, B는 나머지 16피스톨을 가지면 된다.
페르마는 이 풀이법을 파스칼에게 보냈고, 파스칼은 이에 착안하여 ‘이항정리’로 이 문제를 다시 풀었다. A가 2점, B가 1점 득점한 경우 승패를 가리기 위해 치러야 하는 게임이 최대 2번이므로, 제곱식을 이용할 수 있다. (A+B)2=A2+2AB+B2에서 첫째 항 A2과 둘째 항 2AB는 A의 승리가 되며, 마지막 항 B2은 B의 승리가 된다. 따라서 A와 B가 승리할 때의 계수는 각각 3과 1이므로, 3/4이 A가 승리할 확률이며, 나머지 1/4이 B가 승리할 확률이다.
엄밀히 말하면 위에서 사용한 '확률'은 그 정의에 어긋난다. 어쨌든 이로써 파스칼은 수학의 확률 이론 개발에도 기여했으며, 그 계기는 다름 아닌 도박에서 비롯된 셈이다.
4. 명언[편집]
대체로 그의 저서 《팡세》에서 나왔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클레오파트라,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모든 표면은 변했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일단 이 사실이 승인되면 당장에 문호는 최선의 정치를 향해서가 아니라 최악의 압제를 향해서 개방되고 만다."
"왜 사람들은 다수에 복종하는가? 더 많은 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더 많은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항상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전부 부정하고 싶어 한다. "
"도박하는 모든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에 돈을 건다."[7]
"이 무한한 우주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정의는 저쪽에서의 불의다."[8]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5. 여담[편집]
오늘날 대중교통 및 시내버스의 시초가 되는 옴니버스 마차를 세계 최초로 파리에서 시도해 보기도 했다. 창업 반년 후 파스칼의 사망으로 결국 사업에 실패했지만 세계 최초의 시내 대중교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옴니버스(omnibus)라는 단어가 축약되어 만들어진 단어가 바로 지금의 버스(bus)다.
사망 직후 만든 데스 마스크가 지금도 전해진다.
0에서 4를 빼도 0이라고 말한 흑역사가 있다. 당연히 0-4=-4이다. 파스칼이 살던 시대는 음수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수학 천재가 0-4=0이라고 했다는 것을 두고 비웃을 일은 아니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도 자신이 사는 시대의 상식을 쉽사리 초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압력의 SI 유도단위는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파스칼(Pa)이다. 1 제곱미터(㎡)당 1 뉴턴(N)의 힘을 받을 때의 압력을 나타낸 것이다. 대기압의 단위로는 파스칼의 100배인 헥토파스칼(hPa)을 많이 쓴다.
6. 관련 문서[편집]
파스칼의 삼각형
파스칼의 내기
파스칼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