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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抵 風水地理學問은 宗敎와 類似하다★용인풍수지리●

海印導師 0 4,850 2019.06.17 02:24

解說 : 아래 이명박 대통령 선친 산소를 看山한 후, 明堂에 대한 근본적인 이치와 이론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래 명당이란 태조산에서 중조산을 거쳐서 소조산에 이르고 그곳에서 다시 혈장이 뻗어 용혈이 맺히는 산의 중간이나 아랫부분에 조성되는 당판 大局穴 매장 후손 중에 큰 인물이 탄생하는 것이 일반론인데, 이곳은 판국이 작고 야산이고 주위에 뚜렷한 소조산 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입수를 거슬러 쭉 올라가 보니 작은 판국에 태조산·중조산·소조산·혈장·용맥·관기금요가 전부 조성되어 있고, 혈장은 마치 꽃술 속에 감싸져 있는 형태였고, 앞은 안산·조산·어병사·득수지·연못 등이 갖춰져 있었다. 굳이 을 잡자면 혈장 지면의 토질이 非石非土가 아니고 마사토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혈장의 흙은 당혈 매장 당시 못 보았고, 훗날 직접 파보던가 확인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 수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명당의 국세가 작더라도 갖출 것만 제대로 갖추면 명당의 대혈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뜻한다. 다만, 비록 명당일지라도 국면이 국면이 아니고 국면이면 갖출 것을 다 갖추더라도 大人 품격자의 탄생은 어렵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즉 제대로 된 國家君王이나 元帥生死를 초월해서 大局的指導者處世(故 朴正熙, 1917~1979 大統領 品格)를 해야만 된다. 이하 자세한 설명은 전문 풍수지리 분야인지라 생략한다. 물론 수년 전에 이명박조상 先祖가 안장된 경북 영일군 영덕의 여러 산소를 수차례 미리 看山한 바 있다.

 

사실 海印이 풍수지리를 학문적으로 접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 海印導師의 첫 命理學問 師父님이신 自彊 李錫暎 선생님께서 대한민국 서울에서 최초로 官認 역학교육학원인 <韓一易理學院>을 설립하시고, 서울시 중구 을지로 모처에서 문하 교육생을 길러내실 당시, 海印導師는 서울시 세종로 1가에 위치한 당시 <현대건설 토목부 토목기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冬季 본사 대기근무 기간을 이용하여 2~3개월 동안 아래의 교재로 자강 이석영 선생님을 師父님으로 모시고 명리학문 전반에 대해서 正式으로 師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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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기미년 2~3월과 경신년 2~3월 약 4~5개월 동안 공부하였고, 그 후 중동 건설현장 토목기사로 아랍토후국,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등에서 취업 후, 계해년 初 頃 최종귀국했고, 용산구 모처 빌딩에서 <韓國易學敎育學院>을 운영중이신(계해년 2월경, 자강 이석영선생님께서 持病으로 歸天世하셨다) 이석영 선생님의 수제자였던 (丙申年 享年 93歸天世하심)벽천 김석환 선생님(자강 李錫暎 첫 사부님께서 운영하시던 "韓一易理學院"을 인수한 후, 학원 명칭을 "한국역학교육학원"으로 改稱하셨다)을 만났을 때였다.

 

그곳에서 海印導師는 연이어 명리학문 1년 과정을 修了하였다. 당시 <한국역학교육학원>에서는 풍수지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아니하고 그냥 풍수지리학 개론에 대해서 접하기만 했다. 그곳에서는 음양오행론이 모체인 명리학문과 주역과 육효와 관상·수상·육임·기문둔갑법 등 관련 학문을 배웠을 뿐이다. 그 후 그래도 여러 가지 동양철학 관련 학문 중, 주역과 명리학문이 迷信的(미신적)인 요소와 가장 거리를 둔 학문이라고 판단하고 난 후, 명리학문적인 이치에 따라서 직업을 경찰공무원으로 바꾸고 生平 관련 학문에 대해서 줄기차게 공부해와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날 명리학문의 최고경지를 터득하고 나니 결론은 이러했다.즉 음양오행 명리학문은 특정 개인의 사주팔자를 정확하게 알면 그의 과거·현재·미래의 거의 모든 인생행로를 추측할 수 있지만, 특정 당사자의 사주에 이 깊은데도 그것을 治癒할 방법이 없는 학문이라는 즉, 원천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좀 더 원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소위 四柱八字 명리학문의 治療할 수 있는 학문을 찾은 것이 바로 <風水地理 관련 學問>이었다.

 

그래서 특정 인간의 사주팔자 형성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장시간 고뇌한 결과 그것은 바로 특정 당사자의 부모 사주팔자였다. 그리고 부모의 사주팔자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것은 그의 조부모요.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父母兩系 조상들의 사주팔자가 전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추론하여 깨달았다.

 

그러면 그들이 과연 이 세상에 남긴 것이 무엇일까? 냉정하게 판단해본 결과,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 쉼쉬면서 이룬 업적들은 물질적으로는 각종 건축물이 인류 문화유산 등으로 남아있고, 정신적인 업적은 주역 역학 등과 궤적을 같이 하면서 인간의 생활에 유익하고 필요한 각종 농업·의료·과학·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컴퓨터·우주산업·관련 기술 등이 기록유산으로 남아있음을 추론했다.

 

물론, 海印導師佛巖山 모처 陰刻된 큰 바위 부처상 앞에서 百日祈禱를 올리면서 당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天地神明님께 알려달라고 갈구하면서 지극정성으로 발원한바, 어느 날 새벽 非夢似夢간에 눈앞에 보인 영상 즉, <남아있는 것은 유골뿐이다>를 본 결과물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현재 시점에서 분석하면 이렇다. , 수많은 조상님이 이 세상에 남긴 것은 바로 지하에 있는 遺骨(유골)뿐임을 직시했다. 그래서 거꾸로 생각하면 유골이 바로 사주팔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위에 거론한 지극한 개인적인 수련으로 무형의 존재로부터 靈感(영감)을 받아 깨우칠 수 있었다.그래서 터득한 것이 바로 <사주팔자를 바꾸려면 조상의 유골의 상황을 바꾸면 된다>는 명제였다. 물론 개인적으로 지속적인 <精神統一 下丹田呼吸法> 수련이 뒤따랐다.

 

그 후 서울에서 생존한 사람 중에 가장 풍수지리 공부를 오래도록 연구한 남헌 풍수지리학회 이준기(1931년생) 선생님을 명리학문의 스승인 김석환 선생님을 통해서 수소문해서 찾았고, 그의 가르침대로 그와 함께 남한의 무덤(고려조 개국공신 신숭겸 묘 등 八代 明堂 包含) 즉 풍수지리를 공부할 가치있는 수많은 명당을 찾아다녔다. 어저께도 현 대통령의 부친 산소를 간산하면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관련 기록을 남긴 바도 있다. 그간의 과정을 다 기록하려고 하면 시간과 공간이 모자란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간의 모든 것을 종합하면 바로 이렇다. 즉 제목과 같이 <풍수지리는 일종의 종교행위에 연결한다>라는 결론을 얻을 수가 있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諸事物은 순작용과 역작용이 있다. 풍수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으로 귀착시키고 논증하고 틀림이 없는 학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할 경우 장담하건대 사회적으로 順作用(孝道實行)逆作用(가난하지만 탐욕스런 자들이 부모의 유골을 타인의 명당에 몰래 장사 지내는 密葬으로 타인의 명당을 훼손하는 현상) 逆作用(역작용)弊害(폐해)가 더욱 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만들어진 풍수이론(실제 적중함)이 있다. <명당이라도 좌향을 벗어나서 묘를 쓰면 전혀 효과가 없고, 오히려 타인의 명당에 密藏(밀장)으로 신경유좌 등 총 4좌로 산소를 들이면 자손 중에 맹인·애꾸나 신체 장애자 등이 줄줄이 나온다> 이렇게 풍수지리학문은 密葬의 역작용까지 고려한 어찌 보면 기가 막힌 완벽한 학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학문은 근본적으로 쥐새끼 같은 자들이 남의 명당에 함부로 密葬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무식하고 망할 놈들은 이 말을 무시하고 남의 명당에 함부로 密葬한 결과, 자손 중 애꾸나 신체 흠결자와 자살자가 줄줄이 나온 경우를 보았다는 사부님 말씀을 들었다.

 

또한, 풍수지리는 아는 자들만이 행하고 종교처럼 믿는 자에게만 효과가 생기는 것으로 판단하고 실행하면 큰 과오는 범하지 아니하는 학문으로 내다본다. 오랜 세월 동안 금전만 밝히지 않고 公平無私하고 正義에 입각한 가치관을 가진 올바른 선생을 만나서 제대로 올바른 풍수지리 학문을 접하고 현장에서 직접 땅의 생김새를 샅샅이 배운 자는, 그곳 묘소와 관련된 자손들의 장차 발생할 길흉화복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하게 추론할 수가 있다. 그러나 명확한 결론은 종교에 근접한다.

 

이것으로써 kj3021.com 친구들 사이트에서 풍수지리학문과 관련하여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인 필명 와이리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일반적인 풍수지리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갈음한다. 다음은 와이리의 질문 중에서 발췌했다. <조상 묘의 후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역학(力學)적인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과 증명이 불가능한 것 같으니, 어려울 뿐이로다>친구여! 그리 생각하지 말라. 風水地理學問은 자세하게 추론하면 결말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다. 그러나 明確結論風水地理學問宗敎類似하게 近接함을 알 수 있을 뿐임을 慨嘆할 따름이다. .

 

海印導師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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