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國歌 內容을 읽은 後, 甘言利說과 愚眛한 民衆 煽動질 關聯 小考
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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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18:32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사물의 판단력과 종교관이 약간 모자란 민중을 현혹하여 이용하는 방식은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나 한국의 제왕들이나 종교가나 거의 비슷함을 중국 국가의 번역내용을 보고 느낀다. 즉, 구한말 고부군수 조병갑에게 매 맞아 죽은 자신 아비의 한을 풀고자 동학혁명(동학 농민군의 최종 목표는 최제우 교조신원과 당시 부패한 정치가들과 외세를 몰아내고 나라를 바로잡고자 했다.) 당시 황토현 전투 이후 손화중에 의해 대장군으로 임명된 전봉준이 우금티 전투에서 동학교도를 현혹(부적을 붙이고 적군에 전진하면 총과 칼도 비껴간다는 妖言)하여 동학교도 수만명을 기관총을 가진 일본군 군대병력에게 무참하게 거의 몰살당하게 한, 천추에 남을 악행을 저지른 자(그래서 최제우가 1861년 4월 5일 개창하고 최시형이 2대 교주로 된 천도교가 동학혁명의 민중학살 피해 잘못을 저지른 업보로 인하여, 세계적인 종교로 번창하지 못하고 오늘날 한반도에만 존립해 있다고 본다.)의 행위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저 중생은 항상 전후좌우 상하 사방팔방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당시 동학군은 1차 봉기 시절 황룡촌 전투를 비롯한 관군,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기관총을 전리품으로 노획한 경험도 있고 기관총의 대량살상력을 알고 있었다. 이미 적군과 생사를 건 대격전을 치른 경험이 있고, 더우기 살상능력이 가공할 무기까지 노획했다면, 그 신무기에 대한 성능을 조사하고 防備하는 등 작전을 짠후 다음 전투에 임해야 할진대, 도무지 전투의 승리에 대한 작전개념은 전혀 없고, 우금티 전투에서도 그저 총알이 비껴간다는 부적만 가슴에 붙이고 시천주 조화정(侍天主 造化定)이라는 주문만 외우면서 무작정 기관총을 쏴대는 일본군에게 상대적으로 약한 무기(화승총과 죽창 등)를 가진 동학 농민군을 돌격시켜서 비참하게 거의 전멸당하게 했다. 실로 전투에서는 완벽하게 실패한 전봉준과 동학 혁명군 지휘부다. 1차 전투에서 총 병력 1만 명 중에서 6천의 병력이 일본군대 기관총 앞에 사살되었는데, 그렇게 일방적으로 많은 전사자가 속출했지만, 동학 혁명군 지휘부는 전투 방법을 변경하거나 살상능력이 우수한 적의 기관총에 대비한 작전을 짜지 않고, 오로지 종교적인 妖邪한 말로만 선동하여 동학 농민군을 死地로 몰아넣어 학살당하게 전투지휘한, 전봉준과 동학군 지휘부에 보통의 사형방법으로써는 그 죄업을 묻기에는 진정 부족했다고 판단한다.
사실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도 1864년 1월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이곳에서 심문받다가 3월 10일 사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41세의 나이로 참형에 처했다. 당시 효수되어 대구장터 (지금의 달성공원) 앞에 장대에 높이 걸렸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이 생사에 관한 진실을 깊이 깨달았을지라도, 우매한 민중에게는 사실적인 표현으로 있는 그대로 전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소치일 뿐이다. 수운 최제우는 종교적으로 한국에서는 최초로 종교적인 대오를 하신 분이다. 아마도 석가 • 원효 이래로 가장 뛰어난 종교가다. 다만 수운 최제우가 당시 대오각성하여 순수한 종교지도자로 남았다면, 현재 천도교는 엄청난 교세로 세계만방에 퍼졌을 것인데, 한순간 최제우 동학 교조가 오판한 바람에 결국 惑世誣民하는 邪 敎主로 몰리고 왕권을 찬탈하는 반역자인 逆賊으로 몰려서 목이 잘리는 死刑을 당하고 말았다. 물론 그도 인간인지라, 시대적인 혼란 상황에서 수많은 신도가 모이고 곧 天下가 나의 발아래에 굴복하고 있으니까, 후천 세계의 옥황상제(당시 군왕) 자리를 흠모하고 차지하려다가 패망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차라리 무지한 信徒를 이용하여 조직적인 정규 군대를 양성하면서 大望을 성취하려 했다면 오히려 획득한 결과는 더욱 아름다웠을 성 싶다.
이 땅에 외래종교인 불교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 왕 부견이 승려 순도를 통해 불상과 불경을 전파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무려 일천사백팔십팔 년 동안 한반도 거주인의 정신 즉, 종교적인 사상지배를 해온 상태에서, 수운(水雲) 최제우 동학 교조께서 "東方 사람은 우리의 전래 학문으로써 西學을 막아낼 수 있다."라고 설파하면서 유교•불교•도교•천주교의 교리를 합치고 "사람이 곧 하늘이다"란 인내천사상을 만들면서 동학(東學)을 창시하고 <人乃天> 사상을 설파했다는 사실은 실로 엄청나게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곧 세계적인 종교사상의 획기적인 革命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이러한 종교사상 전파가 후세에 엄청난 부작용(1920~30년대 일제강점에 존재한 사이비 종교 집단 "백백교"와 6.25사변 이후, 전파된 기독교가 변한 모든 사이비 종교인 오대양사건 관련교•동방교•영생교 등 이후 수많은 민중을 현혹하고 살해한 사이비종교의 사상적인 뿌리를 제공한 것이다.)을 내다보지 못한 소치 때문에 당대에 41세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니까, 냉정하게 따지면 "邪惡한 動物인 人間에게는 함부로 天機와 秘密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전파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배고파서 눈물의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자에게는 큰돈을 안겨주면, 그것은 바로 파멸과 불행의 씨앗이 된다. 인간은 첫째, 부모를 잘 만나서 올바른 세상사는 사회생활 방식을 배우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둘째는 항상 성실과 근면 정신을 함양시켜야 하고, 셋째는 절약과 절제의 정신을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겸손과 체면을 알게 하고, 전반적으로 종교적인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끊임없는 체육과 정신수련을 하게 하면서, 최종적으로 利他的인 삶에 목표를 두는 등 큰 인물의 그릇됨을 가르쳐야 하고, <調和와 均衡>의 실현을 하게 한 후, 마지막으로 <人乃天>을 가르치는 것이 순서다. 수운 최제우 동학 교조가 이 모든 상황을 냉정한 성찰로 충분하게 고려하였지만, 자신의 종교적인 깨달음을 이용한 후세의 사악한 인간의 출현을 미리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대저 종교는 죽음이 두려운 인간이 그 해결책으로 만들었지만, 결코 해결하지 못하는 門(판도라의 상자)일 뿐이다. 특정 인간의 마음이 이미 정화되고 나면, 외래종교인 천주교든 기독교든 불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릇 성불과 부처는 모두 현생에서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고 바로 하나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항상 현재를 처절하게 깊이 깨닫고 즐기면서 恒在하면 복된 삶이 될 것이다. 三世(過擧•現在•未來)는 모두 현재 속에 농축되어 있을 뿐인 개념과 사실임을 알고 나면, 그것은 바로 得道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판단은 오직 海印의 개인적인 見解일 뿐이다.
海印導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