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死★反芻★용인철학관★용인작명원★해인도사●
며칠 전 초등학교 동기생 일가(10촌 이상의 친척) 중의 한 사람이 귀천세하여 급하게 그의 문상을 다녀왔다. 그와의 인연은 이렇다. 초등학교 시절은 같은 반 친구였고 상호 견해차이로 치고받으며 싸우기도 하였다. 그후 나는 경주중학교에 입학하였고, 그는 신라중학교에 입학한 후에 별로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다. 그후 초등학교 동기생 야유회나 모임에서 간혹 만나던 사이였다. 약 08년 전 경, 나의 증조부모님 산소 벌초 관계로 인하여 그를 만나서 같은 산소와 인근에 모셔져있는 그의 조상 산소 벌초 당시에 그에게 의뢰하여 현재까지 줄곧 그에게 조상님 산소벌초를 의뢰하여 신세졌다. 물론, 적정한 감사료를 지불하였다.
참으로 인간의 감정은 잘 알 수가 없다. 문상 당시 갑자기 그의 영정 앞에서 내가 평소 해인동양철학원 법당에서 예불 당시 잘 외우는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상주(사위와 딸)에게 친구의 종교를 묻고 난 후, 양해를 얻어서 암송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불경 암송 중에 나의 감정이 갑자기 울컥하는 바람에 위 주문을 다 외우지 못하고 중간에 중단하였다. 그래서 위 불경 말미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주문을 세 번 외우고 불경 암송을 마쳤다. 그래서 작정하였다. 향후는 조금이라도 감정이 실릴 수 있는 인간관계를 가진 상가에서는 두 번 다시 불경을 암송하여 그의 영혼(냉정하게 말하자면, 없다)을 위로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같은 실수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는 나의 소신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을 마친 후, 나의 뇌리에서 生&死 문제가 되뇌어진다. 원래 “호모 사피엔스 종족”인 인간의 생성과 소멸을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즉, “우주의 먼지에서 왔다가, 火葬 등으로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면서 하늘&창공에 包攝(포섭)되는 꿈과 같은 허망하고 깨끗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나 해인도사는 평소 生&死 문제를 이렇게 정의하면서 현생을 살아가고 있다. 즉, 살아서는 그저 열심히 또는 한가하게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죽고난 다음 적응하라!(아버지 창공 하늘과 어머니 이 땅에 포섭되면서 변화하여 적응한다는) 철칙을 치열하게 준수하면서 행동할 뿐이었다.
그래! 삶은 살아있음에 의의가 있고, 죽음은 죽어서 생각한 가치판단일 뿐이로다. 며칠 전의 상문 일과 잔상을 싹 씻어내 멀리 확 던져서 없애버리고 오늘과 내일의 나의 직분을 유지함에 최선을 다하자. 그렇다. 어이! 鬼神(귀신)아 물러가거라! 나 海印導師 이렇게 蒼蒼(창창)하게 “순간을 영원처럼”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이로다. 사실은 이렇다. 즉, 우리가 즐겨 호칭하는 귀신의 실체는 결코 없다. 다만, 우리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수사적인 표현에 불과할 뿐이로다. 이만 쓴다. 觀世音菩薩!!!!! 南無阿彌陀佛!!!!!!
海印導師.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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