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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탈원전에 빗장 풀린 기술… 40년 공들인 핵심소스 ‘와르르’

이성수 0 2,199 2019.06.25 04:21

https://m.news.naver.com/read.nhn?oid=022&aid=0003372482&sid1=101&mode=LSD


KOPEC 돈 쏟아부어 개발한 ‘냅스’ / 미국계 설계회사 버젓이 입수 자랑 / 한수원 용역 맡은 설계업체 근무자 / 사전허가 없이 기밀문서 무단 유출 /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될 위기 / 기술보호 불감·두뇌들도 이탈 심각

원자력업계에 종사하는 A씨는 얼마 전 한 미국계 원자력발전소 소프트웨어 설계회사인 W사의 문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난해 말 이 회사가 주최한 협력업체 회의자료에서 한국형 경수로(APR-1400)의 핵심 운영기술인 ‘냅스’(NAPS)를 입수했다고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가 우리 원전 기술개발의 중추인 한국전력기술(KOPEC)과 한국원자력연료(KNF)라고 버젓이 밝힌 대목에서는 20년 경력의 원자력맨인 A씨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KOPEC가 수년간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개발한 냅스는 원전의 정상적인 가동 여부를 진단하는 프로그램이다.APR-1400 운영의 핵심기술 가운데 하나여서 그동안 해외 여러 원전 설계업체들의 요구에도 제공을 거부해 왔다. 전략물자로 지정돼 해외에 나가려면 원자력통제기술원(KAIAC)의 사전허가도 받아야 한다.

KOPEC가 APR-1400을 채택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운영업체 ‘나와’(NAWAH)에 냅스를 유상제공한 적은 있지만 다른 곳에 내보낸 적은 없었다. W사는 그 바라카 원전의 시뮬레이터 설계용역을 따낸 회사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수차 KOPEC에 요청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던 W사가 ‘나와’에 넘어간 냅스의 제3자 기술제공에 대한 통제가 없는 틈을 타 설계에 필요한 자료라는 명분으로 손에 넣은 것 같다”며 “‘나와’로 갈 때는 KAIAC의 허가를 받았지만 W사로 다시 갈 때는 이 절차가 없었다”고 밝혔다.

원자력업계는 냅스 유출을 탈원전 여파가 기술보호 불감증으로 이어진 결과라는 시선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오랫동안 원자력 현장에 있었지만 해외의 견제를 받으며 40년간 쌓아올린 우리 원전의 핵심소스가 이렇게 허무하게 넘어가는 꼴은 처음 본다”고 했다. 국내 원전 산업 기반이 무너지고 전문인력들이 각자도생식 해외취업에 나서면서 불가피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탈원전으로 국내 원전기업들이 생존에 불안감을 드러내고 공기업 종사자들의 해외 이직 행렬이 이어지는 최근 이에 동반한 기술 유출 사례가 속속 불거지고 있다.


기술 유출은 국내 원전산업의 붕괴를 넘어 해외시장까지 설 자리를 잃게 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장 첫 수출 작품인 바라카 원전과 관련한UAE의 푸대접이 예사롭지 않다. UAE는 최근 APR-1400형인 바라카 원전의 정비용역업체를 선정하면서 한국기업의 독점권을 배제하고 국제입찰에 부쳤다. 계약 기간도 당초 60년에서 10년으로, 다시 5년으로 단축했다. 공사를 수주했던 /// 시절 70조원으로 점쳐졌던 계약액은 5000억원 남짓으로 쪼그라들 수 있다. 원전을 수출하고도 기술 주도권은커녕 칼자루를 넘겨준 꼴이다. 


카이스트 정용훈 교수는 “탈원전을 선언한 우리 원전 기술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자국이 고용한 우리나라나 미국, 프랑스 기술자를 통해 우리 경수로 기술을 습득해 자신감을 가진 UAE가 수주액을 낮추려고 전략적 선택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바라카 원전 공사에는 미국 웨스팅하우스나 프랑스 전력공사(EDF) 출신 전문인력들이 포진해 있어 핵심소스 유출은 우리 기술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며 “미국의 기술보호로 인해 40년 넘게 퍼즐 맞추듯 완성한 한국형 경수로 기술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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