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馬故友訪問★용인신생아작명★海印導師●
모처럼 고향 땅에 사는 죽마고우(竹馬故友)를 만나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에 같은 반이었으니까 그와는 만난 후 흐른 세월이 59년이 지났다. 현재 해군 장교(중령)로 근무하는 백령도 아들 면회를 한 후 귀향길의 방문이다.
당시 그가 나를 믿었기 때문에 "한국 역학교육학원" 1년 과정의 수료를 마치고 고향집에 잠깐 머물 때 탄생한 그의 아들 작명을 내가 직접 정성껏 잘해주었다. 친구 아들의 작명은 모두 합쳐서 약 열 명을 넘는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인연의 법칙"의 적용을 받는다. 그 아이들 중에서 직업적으로는 포항제철 근무 공학박사 한명, 해군장교 한명, 현직 판사 한 명 등 한국의 주축 인물로 각각 활동하고 있다. 물론, 경찰공무원과 회사원과 토목기술자나 기계 엔지니어나 선원과 자영업자도 한국 사회의 30~40대 젊은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론한 위 친구는 내가 현대건설 국내 현장에 있을 때 충청도 모처 맹동면 통동리 소재 현장에도 방문하였고, 제216 전투경찰대 16기로 근무할 당시 근무지인 거제도 망치리와 해금강까지 방문하였다. 인근 호텔에 친구의 숙소를 잡은 후, 저녁 10시까지 주점과 사무실에서 함께 지나온 많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함께한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는 일은 많은 엔돌핀을 팍팍 나오게 하였다.
학창시절 함께 공부하였고, 함께 보낸 시간과 많은 추억이 있는 친구는 역시 죽마고우이자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형제보다도 더욱 좋게 다가온다. 해후한 당일은 막걸리와 청하와 소주를 낙지 볶음 안주와 함께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먼 길을 찾아준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그와 그의 가족 건강과 행복을 宇宙의 法神佛님께 축수 發願하면서 이만 줄인다.
海印導師. 合掌
#용인철학관, #용인철학원, #강남철학관, #용인결혼궁합, #용인이사택일. #용인개업택일.
송 태조 조광윤(宋 太祖 趙匡胤, 927년 3월 21일(음력 2월 16일) ~ 976년 11월 14일(음력 10월 20일))은 중국 5대 10국 시대 후주의 무장이자 북송의 초대 황제(재위: 960년 ~ 976년)이다. 자는 원랑(元朗)이며, 아명은 행해아(香孩兒) 혹은 조구중(趙九重)이다. 절일은 장춘절(長春節)이다.
후주의 세종 시영을 도와 요나라 및 10국 정벌에 출정하였다가 세종 병사 후 공제에게 선양을 받아 즉위하였다. (진교의 변) 그러나 선황실의 후예들을 박해하지 않아 뒤에 주자로부터 그 덕망을 칭송받았다.
송나라 건국 뒤에도 정벌을 단행, 970년경 중국 북방을 거의 통일하였으며, 내정으로는 유교적 문치주의에 의한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확립하였고, 과거제도를 정비하였으며 직접 과거 시험을 주관하여 인재 선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비록 중국 재통일은 실패하였으나 그는 중국 재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군주로도 기록된다.